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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암흑속 뜬눈 밤샘/연천·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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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암흑속 뜬눈 밤샘/연천·전곡

입력
1996.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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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민 대피소 “포로수용소” 방불/식수없어 생라면으로 허기 달래/“제방 위험” 가두방송에 공포 절정【연천·전곡=특별취재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악몽의 하루였다.

30년만에 경기·강원 일대를 급습한 대홍수로 정든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과 주민 등 3만여명은 27일 군청과 인근 학교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경기 연천·전곡읍 이재민들은 전날 새벽의 공포를 상기시키는 집중호우가 28일 새벽에도 계속되고 천둥과 번개가 1∼2분간격으로 내려치자 불안에 떨며 공포의 밤을 보냈다.

27일 저녁 9시 전기가 끊긴 임시 대피소는 칠흙같은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일부대피소에서는 랜턴과 비상용 양초로 주위를 겨우 밝힌 이재민들은 배고파 칭얼거리는 자녀들을 달래며 허기진 밤을 보냈다. 끓여먹을 식수가 없어 컵라면 등 긴급 구호품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생라면을 씹어 먹는 모습도 보였다. 군청 3층에 긴급대피한 김은미씨(29·지탄2리)는 『점심때 마른 빵 한조각 먹은것을 빼면 26일 저녁이후 3끼째 굶고 있다』고 말했다.

하오 9시30분께 군청직원들이 읍내를 돌며 핸드마이크로 『철원지역 동송저수지 제방붕괴 위험이 있다』고 알리면서 이재민들의 공포는 절정에 달했다.

적십자사가 나눠준 담요를 덮고 앉은 저지대주민들은 집이 다시 침수되지 않기를 눈물로 기원하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타천1리 주민 이철하씨(46)는 『물이 좀 빠져 집에 가 보니 집기는 모두 부서지고 집안에 진흙더미가 가득차 있었다』며 『다시 집이 물에 잠기면 더이상 살아갈수 없을 것』이라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재민들이 들어찬 임시대피소는 전쟁터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1천3백여명이 수용된 연천읍 대광중학교에는 10평 남짓한 교실에 50∼60명의 이재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교실에서 밀려나온 이재민들은 운동장 곳곳에 텐트를 치고 폭우속에서 밤을 새웠다. 연천읍 통현교회는 도로가 유실된데다 전기조차 끊겨 이곳에 수용된 20여명의 이재민들은 암흑의 공포에서 떨어야했다. 대피소에서 만난 양돈업자 김모씨(연천군 청산면)는 『자식처럼 기르던 돼지 수백마리가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울었다』며 『오늘 내린 빗물보다 내 눈물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시내 중심가 일부는 전기가 들어와 사정은 다소 나은 편이었지만 물에 잠겨 불어터진 물품을 정리하느라 괴롭고 힘든 밤을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L전자 대리점 주인 박철우씨(42)는 『이번 폭우로 1천여만원이 넘는 전자제품이 모두 물에 잠겼다』며 넋을 잃었다. 신서면 신탄리에서 피난온 이갑분 할머니(84)는 키우던 젖소를 생각하며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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