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언론소유 원천봉쇄해야”/「돈 판촉공세」가 과당경쟁 주원인/보도행태 감시 학계 「실무전담팀」 발족도최근 중앙일보 지국원의 조선일보 보급소 직원 살해사건으로 폐해가 표면화한 재벌언론을 규제하고 신문사간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한국언론학회(회장 김정기 한국외대 교수)가 「신문전쟁, 이래도 되는가」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어 관심을 끌었다.
26일 하오 2시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 토론회는 재벌언론의 병폐를 파헤치고 신문사간 과열경쟁의 원인과 대책을 제시했다.
학회는 특히 토론회에 앞서 언론의 보도행태를 감시·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저널리즘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 발족식을 가졌다. 학회는 최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체이사회를 열고 언론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저널리즘 태스크 포스」팀의 구성을 결의한 바 있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문사간의 과당경쟁의 원인으로 ▲신문시장의 포화 ▲독자의 인구학적 속성을 고려치 않은 비과학적인 신문광고료 산정 ▲발행부수공사제도 미정착 ▲신문간의 무특성 등을 꼽았다.
참가자들은 특히 과거 신문사간의 카르텔이 붕괴되면서 촉발된 신문경쟁은 최근 몇몇 석간신문의 조간화와 함께 모기업의 막강한 재력을 내세운 재벌언론이 저돌적인 판촉공세를 펼침으로써 무한경쟁양상으로 본격화했다고 분석했다. 또 재벌의 언론참여는 기업의 수익을 위해 언론을 방패막이로 이용, 사회 모든 세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신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참가자들은 재벌언론이 막강한 자본으로 신문시장을 교란하고 장악할 경우 이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으므로 재벌이나 대기업의 언론소유를 원천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신문과열경쟁에 대한 대책으로 발행부수공사제도 정착, 신문업계의 자율적 판매경쟁규제, 언론업의 독과점제한 제도마련, 신문의 배달 및 판매의 공동체제구축, 신문의 특성화, 지대수입과 광고수입비율의 적정화, 신문사내 경쟁견제장치로서의 노조강화등을 제시했다.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와 손석춘 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 기자가 주제발표를 했다. 유일상(건국대) 안병찬(경원대) 주동황(광운대) 교수 임춘웅 관훈클럽총무 남영진 한국기자협회장 인명진 「바른언론」발행인 심재택 「미디어오늘」편집인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주제발표 내용과 토론 요약/“신문독과점 언론자유 제한 초래”/「공공철학」 바탕 독자층 따른 「질적경쟁」 바람직/ABC제도 정착지원·내부거래 등 철저 단속을
이효성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신문이 독과점화하면 사상과 의견의 다양성이 약화되고 소수의 신문이 비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 『신문업계의 경쟁은 다양성을 보장하는 「선의의 질적 경쟁」이어야지 다양성을 줄이고 질을 떨어뜨리는 「양적 경쟁」이어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그러나 『우리 신문업계는 살인까지 부를 정도로 사생결단의 비공존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과당경쟁의 원인과 처방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원인◁
과당경쟁의 가장 큰 원인은 62년 박정희정권의 묵인하에 시작된 신문업계의 카르텔이 80년대 말 민주화와 함께 무너진데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신문의 출현과 함께 카르텔이 깨지고 신문들은 그때까지 미루어왔던 경쟁을 한꺼번에 치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일부 석간신문의 조간화가 과열경쟁을 부추겼다. 특히 삼성이 모회사인 중앙일보가 조간화하면서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무제한적인 판촉공세를 펼침으로써 경쟁이 더욱 격화했다.
게다가 신문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신문사들의 판매전략은 기존의 독자를 지키면서 다른 신문의 독자를 빼앗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처방◁
◆언론인의 공공철학 확립=지나친 상업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과열경쟁을 막는 첩경이다. 신문의 상업주의와 그로인한 선정주의, 양적 경쟁은 신문의 공공성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 언론관계자는 공공성을 상업성에 우선시키는 「공공철학」을 세워야 한다. 재미와 오락중심의 연성정보에 매몰되지 않고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는 재미가 없더라도 전달하며 사회정의와 진실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권력과 재벌 등 힘있는 세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재벌의 언론참여 규제=언론이 비판과 감시자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 대자본 또는 기타 큰 힘을 가진 세력에서 독립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언론업이 성장해 언론재벌이 된 경우는 많아도 대재벌이 경영하는 재벌언론은 거의 없다.
정치권력이 소유한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에 불과하듯 재벌이 소유한 언론은 재벌의 나팔수가 될 수 밖에 없다. 재벌언론이 모기업과 그 계열사의 홍보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의 재벌언론에서 증명됐다. 더구나 재벌언론이 유리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 판촉활동을 벌이면서 판매경쟁이 격화, 급기야 살인사건까지 유발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이 언론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따라서 재벌이나 대기업은 언론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독일과 같이 재벌의 언론참여를 중소기업에 침투하는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자율적 판매경쟁규제=신문업계가 판매경쟁을 자율규제하지 못해 정부가 개입한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일이다. 언론계는 미국의 신문들이 상업주의 폐해가 극에 달해 규제요구가 높아지자 자율규제를 단행,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스스로 성숙하는 계기를 맞았던 전례를 음미해야 한다. 신문업계는 하루속히 강제성있는 자율규제 제도를 도입해서 실시해야 한다.
◆ABC(발행부수공사)제도 추진지원=이제 신문은 정확한 유가부수에 근거해 광고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무작정 부수만 확장할 것이 아니라 신문을 특성화하고 자신들의 독자층에 대한 인구학적 속성을 조사해 광고주에게 제공함으로써 광고효과를 높여주어야 한다. ABC제도가 초기에 몇몇 신문에는 생존위협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과당 판매경쟁을 줄이고 효율적인 광고를 가능하게 해 자원낭비를 없애는 등 사회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력한 대처=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당국은 무가지살포 경품제공 등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재벌신문이 계열사를 통해 높은 단가의 광고를 제공받거나 계열사의 임직원 등에 구독을 강요해 부수를 늘리거나 계열사에서 자금이나 인력을 지원받는 등의 부당한 내부거래까지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토론◁
안병찬 교수는 『재벌언론문제는 이번 기회에 규제제도장치 마련 등 근원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 언론도 소유와 편집을 구분하고 도덕성과 공익성을 강화해야 재벌언론과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명진 발행인은 『재벌언론과 언론재벌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은 잘못이다. 과도한 판촉경쟁끝에 사람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면서 『바른언론이 조사한 결과 중앙일보가 구독강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 판매경쟁을 주도한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심재택 편집인은 『이번 사태에는 주범과 종범이 있다. 차제에 재벌의 언론소유를 금지해야 한다』며 『재벌의 신규언론참여를 막는 법적장치가 마련돼야 하고 기존 재벌의 모기업과 언론을 서둘러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동황 교수는 『막대한 돈과 조직력으로 신문시장을 교란하고 자신의 이해를 신문지면에 반영하는 것이 재벌언론의 문제』라고 밝히고 『신문편집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불공정거래 독과점 등 시장거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입은 정치권력의 언론개입과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이희정·김동국 기자>이희정·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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