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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분쟁 악화 부룬디 갈등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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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분쟁 악화 부룬디 갈등 배경

입력
1996.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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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후투족­소수 투치족 끝없는 증오/식민시대부터 고질… 72년이후 15만명 희생/이번사태는 20일 투치족 340명 학살서 발단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가 피비린내 나는 종족간 내전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새 정부 수립에 나섰고 공수부대가 방송국 등 수도의 주요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쿠데타가 터질 것같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 실베스트로 은티반퉁가냐 대통령(40)은 23일 밤부터 3일째 미 대사관저에 피신중이다.

사태는 20일 다수 후투족이 소수 투치족 340명을 학살한 것이 발단이 됐다. 후투족 출신 은티반퉁가냐 대통령은 암살을 우려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부족에 화해를 촉구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성난 투치족 군중들의 돌멩이 세례에 헬기를 타고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치족이 주도하는 제1야당 민족진보연합은 이 학살사건에 분개, 대통령이 후투족 학살자를 두둔하고 있다며 현재의 후투·투치족 연립정부 수립의 기초가 된 「권력공유협정」파기를 선언했다.

이 협정은 종족 구성이 똑같은 인접 르완다에서 94년 4월부터 6개월간 계속된 내전으로 100만명이 학살된 것을 계기로 그같은 참사발생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같은해 9월 두 종족간에 합의·서명된 것이다.

은티반퉁가냐 대통령은 협정서명 직후 취임, 증오를 화해로 바꾸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그 자신 증오의 희생자였다. 93년 10월 외무장관이던 그는 투치족 일색의 정부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최초의 후투족 출신 대통령을 살해하자 프랑스대사관으로 피신했으나 아내는 대검으로 학살당했다.

두 종족간의 증오는 고질에 가까운 것이다. 부룬디는 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으나 이후에도 식민지 시절과 똑같이 수적으로는 전체의 14%밖에 안되는 투치족이 정치 군 행정 교육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해왔다. 85%인 후투족이 「소수파」였다.

두 부족의 헤게모니 싸움은 잔혹한 내전으로 폭발, 72년에만 후투족 10만명이 살해되는 등 지금까지 1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추진해온 화해조치는 결국 『불가능한 꿈』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동족인 후투족은 그가 투치족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한다며 등을 돌렸고 투치족은 대통령이 후투족 반군을 너무 온건하게 대한다고 배척했다. 벌써부터 『그가 탄자니아로 망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 220달러로 세계에서 8번째로 가난한 이 작은 나라의 앞날을 증오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이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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