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닦기」란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없다. 우선 듣기에도 생소하기만 하다. 그러나 전남 여천군의 어민들에겐 생업의 뜻으로도 쓰여 온 독특한 낱말이다. ◆22일로 시 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 만1년이 된다. 길이 3백26m, 폭 56m, 높이 30m의 거대한 키프로스 선적 시 프린스호는 지난해 7월23일 하오 2시 원유 8만3천톤을 싣고 태풍을 피하다 여천군 남면 소리도 앞 해상에서 암초에 좌초, 7백여톤의 벙커C유를 바다에 쏟았다. 그 후 1년이 지나도록 주민들은 해변의 모래, 바위에 묻은 검정색 기름을 헝겊으로 닦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 ◆남자는 하루 5만원, 여자는 4만원의 품삯이 생업이 되다시피했다. 그동안 바다에 기대어 살던 1천여 피해가구 가운데 2백여가구는 이미 외지로 떠나갔다. 지금 남아 있는 주민은 닦기로 살아가거나 피해보상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10개월의 싸움끝에 지난 5월에야 국제유류오염피해배상기금에 청구된 피해액(5백81억원)은 언제쯤 지급될지 알 수가 없다. ◆전복·소라·해조류·바닷고기 등 해산물은 청정수자원보고란 자랑을 잃고 말았다. 산란이 안되고 성장이 늦어 생업으로서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동안 뿌린 2백여톤의 유처리제는 제2의 오염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소한 앞으로 3년동안은 어패류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완전복원엔 20년이상이 걸린다는 학계의 주장이 어민들을 더욱 절망케 한다. ◆시 프린스의 후유증이 아물기도 전에 이젠 여천공단의 공해파동까지 겪게 됐다. 희망을 잃은 주민들은 「사고가 나면 왜 주민들이 떠나야 하느냐」고 원망한다. 시 프린스호 사고의 뒤처리나 공단공해 대책들이 눈가림식이라는 것이다. 정든 고장에서 그대로 살고 싶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업의 터전, 바다를 왜 등져야 하는가 하는 절규에 누군가가 답해 줘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