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한국인들처럼 정치를 좋아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이는 해방공간 3년동안 미군정사령관이었던 존 하지중장이 한 말이다. 민주·공화 양당제의 민주정치만 보아왔던 그로서는 자고나면 정당과 사회단체가 족출하고 저마다 지도자요, 자신들의 정견만이 입국방략이라며 떠들어대는데 지친 것이다.
그런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우리는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 48년간의 헌정기간동안 쿠데타 등 우여곡절과 파란 속에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키워왔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정치는 나쁜질에다 저수준이고 정치인·지도자들은 국민의 불신 속에 정치를 할줄 모르는 사람들로 평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총선 직후 여야 수뇌들의 「화해 정치」다짐도 잠시일뿐, 의원 영입파문으로 국회개원이 한달이나 지연됐고 간신히 열렸으나 여당 초선의원의 두 야당총재 공격으로 영수회담이 무산되고 정국이 하루아침에 얼어붙는 등 마치 닭싸움내지 냄비끓는 식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불쾌감을 넘어 염증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오래 전부터 깊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추려서 10가지 병을 살펴보자.
첫째는 이중성과 위선병이다. 지도자들부터 입만 열면 새정치, 미래정치, 큰 정치 운운하지만 행동·행태는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이다. 도대체 여야가 만장일치로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을 개정했음에도 3김씨는 여전히 후보공천권을 장악, 행사한 것이다. 둘째는 무책임병이다. 민주정치는 곧 책임정치임에도 거의가 책임 안지는 것을 마치 정치 잘하는 기술로 착각, 자랑(?)하고 있을 정도다. 셋째는 상대방 무시 내지 불신병이다. 여야가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듣고 존중하기 보다는 힘과 오기로 맞서 일방강행과 극한투쟁이 습관적으로 빚어진다.
넷째는 지역주의병으로 이는 정치파탄은 물론 국민을 분열시켜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망국병이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개탄하고 일소를 강조하지만 정치적으론 이용하고 부추기는 점이다. 집권자가 상당수 요직을 학·지연으로 독점·편중되게 하고 야당 당수들이 지역등권논·싹쓸이논으로 성과를 올린 것 등이 대표적이다. 다섯째는 물러나지 않는 병으로 책임 안지는 병과 맥을 같이한다. 국민의 심판과 세대교체 요구에 아랑곳 없이 수성한다.
여섯째는 법규와 룰을 안지키는 병이다. 자신들이 만든 것임에도 충분한 토론후 표결 대신 불리하면 농성 등으로 의사방해를 하는 일이나 여당의 날치기 통과 등은 버려야 할 유산이다. 일곱째는 정당의 사당화 붕당화이다.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은 3김씨가 사실상 완전 장악, 1인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정당의 생명인 당내 민주화는 보기 힘들다.
여덟째는 후계자 안키우는 병이다. 공식적으로는 평당원등 누구든지 모든 선거직 당직과 각종 후보경쟁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각당서 3김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도전도 용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홉째는 대권병이다. 정당의 궁극적 목적이 집권에 있기는 하지만 오늘의 정치와 지도자들의 행보는 대권과 연관되어 있다. 끝으로 국민을 무시하는 병이다. 기회있을 때마다 국민을 위하고 민의를 존중한다고 강변하나 실제는 거의가 당리당략이 우선이다.
우리 정치의 부정적 요소들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필자는 정치인―지도자들이 48년동안 민주 발전을 위해 이룩한 공과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각종 병들의 증세가 심각하여 성과들을 가리고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가에는 여야간의 이념과 노선자랑, 그리고 정책경쟁은 없고 오직 내년 대선을 의식한 여야·3김의 힘겨루기, 상대방 기죽이기와 대변인들을 통한 말싸움, 공방만이 요란할 뿐이다. 이런 상황, 즉 각종 고질병이 계속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예측 가능한 정치는 말할것도 없고, 새정치·미래정치·큰정치도 모두가 요원할 뿐이다.
김대통령은 정치분야의 개혁을 임기 중의 마지막 개혁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정치개혁이란 바로 앞에서 열거한 10가지 병을 치유하는 작업이다.
물론 정치개혁 즉, 10대 병 치유는 3김과 여야 정치인의 대오각성과 국민의 협조로 이룰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김대통령과 여당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모든 병을 고치는 길은 그런 증세가 나오지 않도록 여당이 양보와 끌어안기, 「이기는 정치」가 아닌 「지는 정치」, 당장의 전과보다 국민과 역사의 심판에 맡기는 대하정치를 펼치는 일이다.
이처럼 여당이 크게 변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되고 야당과 두 김씨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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