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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 지음 단편집 「숏컷」(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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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 지음 단편집 「숏컷」(요즘 읽은 책)

입력
1996.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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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실연 다룬 간결한 문체에 매료단편소설의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레이몬드 카버를 좋아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하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더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짧고 경쾌하게 느껴지는 카버의 문체는 예고없이 찾아드는 일상에서의 폭력과 죽음에의 예감과 실패하고야 마는 사랑이 배경처럼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남자들만이 숭어낚시여행을 떠난다, 여행간 강가에서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소녀의 시체를 만난다. 남자들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시체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결국은 그냥 두고 캠핑과 낚시를 즐기기로 한다. 남자의 부인은 나중에 남편이 폭행했으리라는 생각에 집요하게 시달리고 남자는 자기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지친다. 남자의 부인은 한가로운 일상에서도 문득문득 살인과 광적인 신경증의 예감에 시달린다. 오래 전에 살해당한 고등학교시절의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불안한 생각. 이 소설의 제목은 「발 밑을 흐르는 깊은 강」. 평범한 일상에 잠자듯 스며 있는 잠재적인 불안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

「친밀」이라는 작품이 있다. 오랫동안 만나고 있지 않던 전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에게 커피를 주고 옛날에는 이러이러하게 남자가 자기를 괴롭혔는데 지금은 그런 것은 다 잊어버리고 모두 남남이라는 식의 말을 한다. 남자는 거의 가만히 듣고만 있다. 맞지 않는 부부였고 남자는 많이 잘못한 것 같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여자의 치마를 붙잡고 있다. 남자가 왜 그러는지 설명이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제 당신은 자유고 어디에든 갈 수 있다고 하고 자기에게도 자기의 인생이 있다고 말한다. 남자는 거리로 나온다. 카버의 단편들에 자주 등장하는, 우울하고 무력한 중년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하거나 밝고 낙천적인 일상이 아니다. 어떤 소설이든지 여러 가지 면이 있고 또 읽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면이 각각 다 다른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카버의 부정적인 면에 집착하는 강박관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하루키가 카버에 대해서 해설을 썼는데, 해설을 먼저 읽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맛이 떨어진다.<배수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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