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 산자락을 끼고 해발 600m가 조금 못 되는 설화산이 있다. 주말이면 제법 등산객들의 발길이 분주한 곳으로, 맑은 날 정상에 서면 인근 아산시지역은 물론 천안시와 멀리 서해바다까지 보인다. 그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산은 때아닌 무슨무슨 산악회니, 하는 리본―내가 보기에 그것들은 나무에 쓰레기를 매달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짓이다―들이 나붙기 시작했다.그런데 같은 산자락인 이웃마을에 「데이콤 아산지구국」이 개통된 것은 92년 여름이었다. 과수원땅을 매입해 건물을 세우더니 그 지붕에 위성용 파라볼라 안테나가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정보화시대의 실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뒷산 중턱쯤에 「자연보호」라고 쓴 거대한 표지판이 세워졌다. 도로를 지나다 후미진 산등성이에 선 자연보호 표지판을 볼 때마다 나는 두 가지 의문점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사람들이 저런 걸 발견하고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점과 저 무거운 재료를 어떤 방법으로 저 곳까지 날랐을까, 하는 점이었다. 고속도로변에 선 광고탑의 크기를 떠올려 보면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뒷산 중턱에 선 표지판과 일직선으로 산 아래까지 난, 전에 없던 자국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철제 표지판 재료를 크레인줄에 매달아 동력을 이용해 그 곳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일직선으로 나무를 모두 베어낸 까닭이었다.
우리는 자연보호 표지판이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앞장서는, 이미 폐기처분된 구호나 기호와 동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거나, 정보화의 산실이라는 곳에 들어앉은 분들은 자연보호 표지판이 자연보호에 여전히 효험있는 부적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게다가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마침내 자연보호 표지판은 철거가 되었는데, 철거된 재료가 헬기로 공수되지 않은 이상 그것들은 다시금 나무를 베어낸 그 공간으로 내려졌을 것이다.<박경철 소설가>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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