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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거운동팀 옐친 살렸다/전문가들 극비 입국 반공전략 등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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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선거운동팀 옐친 살렸다/전문가들 극비 입국 반공전략 등 수립

입력
1996.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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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7월15일자95년 12월17일 공산당이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보리스 옐친 재선운동을 책임지고 있던 올레그 쇼스코베츠 제1부총리는 모종의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벨로루시 출신의 미이민사업가인 팰릭스 브래이닌을 찾았다. 『미국인들을 찾아달라.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밀이다』 그의 주문이었다. 공산당이 눈치챈다면 「옐친은 미국의 도구」로 역공당할 수도 있었다. 브래이닌은 즉각 캘리포니아주 공화당과 가까운 프레드 로웰 변호사와 협의했다. 로웰의 주선에 따라 피트 윌슨 주지사의 비서실차장을 지낸 정보분석가 조 슈매트와 조지 고튼, 뉴욕주재 정치자문가인 리처드 드레스너가 합세했다. 특히 드레스너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주지사 시절 그의 선거진영에서 일한 바 있다.

2월 27일 쇼스코베츠로부터 만나자는 통보가 왔다. 그는 『당신들은 이제 고용됐다. 우리들을 도울 미국인들이 있다고 옐친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3월1일부터 4개월 계약에 25만달러를 받고 캠페인 관련비용 일체를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모스크바의 프레지던트 호텔에 사무실을 차린 팀은 즉각 작업에 들어갔다. 팀장은 옐친의 딸인 타티아나 다첸코(36)가 맡았다. 3월2일 팀은 선거전략의 대강을 완성했다. 전략은 오직 하나- 적을 철저히 깨부수는 일이었다. 반공전략 수립과 함께 구체적인 이행방안들이 연구됐다. 우선 국민들이 공산당을 두려워하는 실체는 무엇인지 조사됐다. 긴 줄과 텅빈 선반, 재국유화 등등… 하지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내전 발발 우려였다.

6월16일 1차 투표일은 악몽과 같았다. 드레스너는 그날 열린 러시아 대 독일간의 유럽선수권 축구대회가 일을 망쳐놓았다고 푸념했다. 선거가 끝나자 마자 팀은 옐친이 겨우 3%포인트차로 리드한 경위를 분석했다. 그중에는 옐친이 록콘서트에 참석한 사실도 지적됐다.

다음은 결선 투표일을 잡는 일이었다. 주가노프에게 자금을 모을 시간적 여유를 줘서는 안되는 것이 첫째 목표였다. 최대한 이른 7월3일로 결정났다. TV에 선거광고를 융단폭격하며 알렉산데르 레베드를 내세워 민족주의자들을 묶어 나갔다. 옐친의 건강 문제가 불거졌지만 이미 승패는 결정나 있었다.<정리=윤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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