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 동구공산체제가 몰락한 이후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해괴한 집단은 단연 북한일 것이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나도록 국가의 주석과 유일당인 노동당의 총비서직을 공백으로 둔 채 공식적으로는 최고통치권자 없이 국가를 운영해 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통치권자의 얼굴이 없는 북한체제가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북한체제의 지속과 붕괴 및 혼란은 곧 한반도의 긴장과 평화, 나아가 통일 분위기 조성 여부와 직결되어 있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분단 이래 50년 이상 스탈린식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해 온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독재체제가 날로 흔들리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80년대 이래 지속돼 온 경제난은 에너지와 원료부족으로 공장가동률이 30여% 수준으로 악화일로에 있고 만성적인 식량 부족은 작년 홍수로 결정적 타격을 입어 전세계에 원조를 구걸할 정도가 됐다. 또 이로 인한 배급체제의 중단과 사회통제의 난조 등으로 탈북사태가 꼬리를 물 정도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국방위원장을 맡은 김정일이 인민군 사령관을 겸하면서 북한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라는 데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지난 2년 동안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미룬 채 죽은 부(김일성)에 의한 이른바 「유훈통치」를 지속해 오고 있는데는 여러가지 속사정을 읽을 수 있다. 겉으로는 주민들에게 동양 전래의 3년상을 내세우지만 부와 같은 신화적 카리스마도 업적도 없으며 무엇보다 극심한 경제난·식량난의 극복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파국직전의 상황에서 김정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평화공존과 자멸과 전쟁 등 세가지일 것이다. 지금처럼 반시대적인 폐쇄속에 철권독재는 자연적인 체제몰락을 자초하게 되고 어설픈 도발 역시 자멸 뿐이다. 결국 최선의 선택은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4자회담 수용으로 남북대화 재개와 대미·일관계개선으로 경제지원을 얻는 것 뿐이다. 유훈통치에 북한주민들이 언제까지 속고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주의하고 경계하며 대책을 서둘러야 할 쪽은 바로 우리 정부와 국민이다. 내부동요와 혼란, 불시의 대남도발,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탈북자홍수 등 최악의 사태를 예상,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은 숱한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는데도 세계 제5위인 1백20만병력 등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4자회담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인양 북한사태를 안이하게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북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