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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선을 보고/박제훈 인천대 러시아경제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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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선을 보고/박제훈 인천대 러시아경제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6.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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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재선의 의미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이 예상대로 당선되었다. 예상대로라고 하지만 올해초 여론조사로 볼 때 옐친의 재선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불과 반년사이 상황이 역전된 것은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한 옐친측의 선거전략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이보다 30% 정도의 고정표를 확대시키는데 실패한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후보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은 중도좌파 또는 서구식 민주정당으로 변신해 정권을 탈환한 중·동구의 구공산당과는 달리 당의 기본 이념이나 노선에서 구 소련공산당(CPSU)과 분명히 단절했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아무리 옐친이 지난 5년간 개혁 추진과정에서 실정을 했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구소련공산당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주가노프는 보호주의, 인플레 압력을 막기 위한 고정가격제 도입, 가스 원유 등 주요 기간산업의 재국유화 등을 주장하면서도 시장경제체제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전개했으나 이들 정책이 과거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로의 복귀없이 수행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옐친의 재선은 러시아 국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 공산당의 패배는 공산주의 체제 붕괴이후 중·동구의 좌파 부활 경향에 결정적인 제동을 건 셈이다. 만약 이번에 교조적인 색채를 많이 보존하고 있는 러시아 공산당이 승리했더라면 러시아 뿐만 아니라 체제전환을 추진해온 구공산권 국가들에 파급효과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방과 주변국들은 91년 해체된 소연방과 공산주의의 부활가능성을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옐친의 승리로 러시아는 명실상부하게 체제혁신의 2기를 맞이하여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물론 이번 승리로 개혁이 순탄하게 진전될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비록 중·동구와는 달리 최고지도자는 바뀌지 않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광범위한 반정부·반개혁 세력의 존재는 옐친 2기정권의 개혁노선에 대한 기본적 수정을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이미 집권초기 급진개혁정책의 실패 이후 최근까지 러시아 개혁정책은 사실상 온건노선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향후 국내정책에 있어서 경제분야는 이미 사유화의 진전으로 시장경제가 정착돼 개혁속도는 다소 늦어진다고 하더라도 기본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혁노선의 수정은 불만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국민의 생활수준 및 질향상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민족주의 세력의 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친서방·친미적인 이미지를 벗으려는 노력이 전개될 것이다. 보다 독립적인 대외노선의 추구는 구소련의 공화국들 또는 독립국가연합(CIS)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의 확대 움직임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또 서방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협력 확대 등 대아시아 외교정책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의 승리를 고대했던 몇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가 북한이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공산세력 복귀는 분단된 한반도에는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옐친의 승리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엔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그간 러시아 진출에 큰 장애가 돼왔던 정치적 불안이 이번 선거로 상당히 해소돼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대선은 80년전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공산정권이 들어선 러시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당의 집권여부를 국민이 심판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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