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시기에 가격을 대폭적으로 인상하는 조치는 어느 모로 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경제위기론과 함께 하반기 물가불안 때문에 모두가 태산같은 걱정들을 하고 있는데 버스요금과 휘발유 담뱃값을 한꺼번에 10∼30%씩 올려버린 것은 안정의지를 의심받을 만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세 품목이 모두 어쩔 수 없는 인상요인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설령 그 인상요인들이 전부 타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가격을 인상하는 일련의 과정과 정책을 다루는 당국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버스요금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첫째, 불가피한 인상요인이 얼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검증 받으라는 것이다. 여론에 공개되는 일련의 절차를 통해 불가피한 최소한의 인상폭이 얼마라는 것을 먼저 인정받고 국민적 합의와 공감을 구해야 한다. 둘째, 검증받은 인상폭이 일단 결정되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분담하느냐 하는 문제가 논의돼야 할 것이다. 몽땅 서민들이 부담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버스회사가 경영합리화의 노력을 통해 얼마, 정부가 재정지원이나 기타 방법으로 얼마, 서민들의 직접부담이 얼마하는 식으로 인상요인(물가상승)의 고통을 조금씩이라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특별소비세에 다른 세금을 부가하게 됐으니 어쩔 수 없소하고 10%, 교육세를 새로 부담하게 됐으니 별 수 없다며 최고 30% 하는 식으로 덜컥 덜컥 가격을 인상해 버리면 국민입장에서는 정부가 성의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기업이나 업자들은 인상요인을 누적시킬 수 없으니 올려야겠다고 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세금을 거두어야겠으니 할 수 없다며 괴로워하는 흔적도 없이 쉽게 쉽게 가격인상을 해버리면 국민에게 할 말이 없게 된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생계비가 가장 비싼 나라중의 하나이니까 임금을 자꾸 더 올려달라고 해도 자제를 설득할 명분이 없게 된다.
물가와 관련해서 우리가 가장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은 임금상승이 물가를 밀어올리고 물가상승이 다시 임금상승을 유발하는 임금과 물가의 악성순환 구조다. 지금 상황에서 우려되는 것은 이런 악성순환구조가 재현되는 것이며 이 고리를 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다.
물가를 잡자면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먼저 정부가 솔선해야 하고 기업과 국민이 합심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성적인 물가상승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정부나 기업 일반국민이 모두 경각심을 갖고 안정을 위한 강력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번에 정부는 최근의 전반적 경제상황에 대해 너무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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