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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천과 의사직/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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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천과 의사직/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화요세평)

입력
1996.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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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 서울 어느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해서 방영된 KBS의 「열린음악회」에서는 인술에 감동한 어느 입원환자가 주치의사에게 바치는 송시가 낭독되는 가운데 그 자리에 나온 당사자인 한 중년의사 얼굴이 수백만 시청자에게 소개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영광인가.모든 의사가 이 비슷한 경우를 당하면 좋겠지만 실은 이들은 지금 사면초가가 되어 웅크리고 있다. 직종이 많지 않던 우리 초등학교시절 유행하던 재치문답 하나가 기억나는데, 『허가받은 도둑놈은?』이라 질문하면 의사, 변호사, 사진사가 그 정답이었으니 이 세 직업에 대한 보통사람들이 품었던 선망과 분노의 정도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이 「삼총사직업」중 사진사가 그 중 먼저 시들었는데, 이는 사진기 염가보급, 필름현상소 간의 경쟁, 자동복사기의 출현 때문이었다. 의사는 그 전문과목에 따라 수입이나 인기도의 오르내림이 그간의 사회변천과 관련되어 그 폭이 컸다. 즉 50년대와 60년대는 전쟁, 성병, 임신중절과 출산붐이 겹친 시대였던지라 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가 위세부렸고, 결핵같은 전염병 때문에 호흡기내과와 결핵과도 인기가 있었다. 국민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한 70년대는 육아열, 술걱정, 간걱정으로 소아과와 위장내과가 콧대를 높였다. 80년대 이후로는 안과와 이비인후과로 의사들이 몰리는데, 이는 안경쟁이 학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다 그간 죽을 병이 아니라서 치료 우선순위에서 밀려왔지만 고통은 오히려 크던 눈병, 귓병 환자가 몰려드는 탓이다. 또 스포츠 일반화로 피부노출에 신경을 쓰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로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빛보게 되었다. 그리고 90년대는 경제적 풍요와 정신건강 추구에 힘입어 심장내과, 정신과, 재활의학, 성의학이 인기과목에 추가되었다.

○전성시대 종지부

그러나 의사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전성시대는 이미 80년대 중반에서 끝났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도 이과반 최우수생들이 지망은 하고 있지만 졸업생사회에서는 십년사이에 그 요란하던 「열쇠 3개」심리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지금 몰락과정에 있다. 동구쪽은 오래 전부터요, 일본과 서구쪽은 한 20년전쯤이고, 미국쪽도 몇년 전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럴만한 까닭 몇 개가 있다. 그 첫째가 의과대학과 의사수 모두가 급격히 늘어 이제 해마다 3,000여명의 새 의사가 나오는데 이는 한 세대 전보다 5배가 높은 수치이다. 그 사이 인구는 2배만이 늘었을 뿐이다. 또 한국은 땅이 좁아 지도상의 무의촌이라 할지라도 차 타고 30분만 나오면 어디에나 의료기관이 있다. 두번째 이유는 의료계몽과 영양섭취 덕택으로 사람들이 이제 병에 덜 걸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세번째는 의료보험제도가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는 데에 있다. 77년 시작된 의료보험제도는 모든 의사를 강제로 이 제도 하에 묶어둔채 박리다매식 염가로 매긴 진료비만을 받게 하고 있는데, 진료비 가운데 어떤 것은 실비에도 못 미친다. 넷째, 큰 의료기관에서는 수년내에 영상매체를 통한 원격진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전문의사들이 굳이 곳곳에 산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섯째 이유는 의사직이 전직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법과대학을 나왔다면 두루뭉수리하게 이 분야 저 분야, 갈 곳이 많겠지만 의과는 여러 해를 세상물정 눈가린 채 외곬로만 파게 하는 기술교육만 시키기 때문에 학력에 걸맞은 타직종을 갖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착한마음」이 필수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궁지에 몰린 의사들이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서 환자유치경쟁에 발벗고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 와중에 생길 공산이 큰 부작용 하나가 지극히 우려스럽다. 즉 건강염려증환자들을 실제 환자로 간주하여 치료할 위험성이 바로 그것이다.

의사찾는 사람들의 3분의 1은 병없이 건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생긴 일시적이고 사소한 증상을 침소봉대해서 의논해오는 경우로서, 이때 의사는 병이 없다고 단호하게 상대를 내모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듣는 쪽에서는 그 말이 못 미더워 일부는 쳇바퀴 돌 듯 병원가를 순례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의사쪽에서 바로 이 점을 이용, 병 아닌 것을 병 비슷하게 보고 치료에 응할 위험이 있으니 이렇게 될 때 가정지출과 국력의 낭비가 엄청날 것이다.

원래가 의사직은 중류직이었고 의학은 응용과학의 하나였기 때문에 머리좋은 사람만이 하는 직업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순수과학에서 더 필요로 하며 의학에서는 기초대학과 연구직이 더 적격일 것이니 일상에서 환자를 다루는 임상의사직은 그 다음급 두뇌에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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