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한반도외교정책이 한미쌍방관계에서 남북한 및 미국을 잇는 3각관계로 가려하고 있다. 이미 그쪽으로 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워싱턴정가에 끈을 맺고 있는 외교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미국은 3각관계로 간지가 오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금년중에 워싱턴에 북한연락사무소가 설치되고 평양에 성조기가 휘날리게 되면서 어쩌면 이르면 금년중에라도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북한은 미국이 벌써 자기들 편이 돼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핵문제를 다룰 때도 북한은 미국과만 얘기하겠다고 버텨 결국 그렇게 성공했고 지금의 미사일협상 역시 미국과만 얘기하겠다고 주장해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미군유해 협상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 미국과 공동제안해 놓고 있는 4자회담에 관한 설명회도 북한은 미국 혼자서 한다면 응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26일 미북간 극비회담을 열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오직 미국과만 얘기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핵을 무기로 미국을 자기손 안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핵협정을 큰 외교성공으로 꼽고 있는데 이런 태도를 붙들고 북한은 미국을 끈덕지게 조르고 위협하면서 한국따돌리기 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과정에 결과적으로 말려 원자로건설에서도 돈만 대는 신세가 됐고 쌀지원도 당초의 방침을 굽히고 300만달러를 지불하게 됐다.
왜 이런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인가.
미국외교가 이상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불과 200년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세계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국가가 된 것은 그 국가의 이상이 미국만큼 훌륭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동안 미국은 이 이상을 바탕으로 국제정치무대를 누볐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상은 독립선언서에 나타나 있는 바처럼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됐고 개인은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가졌으며 국가는 이런 권리를 확보하게하는 것이 의무라는 것이다. 이 사상은 미국헌법에도 명시돼 있고 링컨의 게티스버그연설에도 표현돼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와 싸워왔고 유엔을 움직여 한국전에 뛰어들게 했던 것도 이 이상때문이었다. 그러나 힘의 균형원리에 바탕을 둔 키신저의 힘의 외교(Power Politics)가 미국외교를 지배하면서부터 이런 이상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키신저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차이를 무시한 채 남북베트남간의 등거리외교를 펴다가 월남을 공산화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다시 한반도에 3각관계라는 이름의 남북등거리외교가 펼쳐지려하고 있다. 북한의 비인간적 국가체제를 바꿔야한다는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외에는 개인의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 개념이 없는 나라이다. 미국의 한반도 3각관계론은 분명히 미국외교의 이상을 잃어버린 힘의 균형원리에 의한 정책과오로 야기되는 것이다. 아직 미국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런 3각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반도문제는 남북당사자들의 대화와 타협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월남에서 이미 과오를 범한 등거리외교개념이 한반도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미양국은 노력해야 한다.<정일화 편집위원 겸 통일연구소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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