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 통상문제를 다루는 통상산업부관료들은 「통상에 관한한 강국인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귀하게 여긴다. 70년대 이후 통상분야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한 선배 통상관료들의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이말은 이제 불문율로 자리잡았고 이 전통은 미키 캔터 미상무장관의 이번 방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캔터장관이 관련부처 장관을 만나 신공항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SOC)과 통신장비 등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참여 확대를 강도높게 주장하고 있는데도 통산부 통상담당 고위관료들은 회담이 시종일관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항상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은 그의 얼굴에선 미무역대표부(USTR)대표시절의 강성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고 장관이 되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는 토를 달기도 했다.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든지 아니면 교섭력이 허약한 과거 정권때처럼 면전에선 다 들어주고 국민에게는 그 의미를 축소하는 구태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통산부장관은 국무회의도 불참한 채 장관집무실도 아닌 시내 호텔로 달려가 캔터를 만났다. 통산부차관은 주한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미국 자동차전시회에 참석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는 미제』라고 말하는 캔터와 함께 시승했다. 올들어서만 80%이상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미국산 차때문에 아우성인 국내 자동차업계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
통상관료의 사대적이고 비굴하기까지 한 이런 행태와 시각때문에 워싱턴관가에선 「한국은 누르면 나오는 가장 만만한 교섭상대국」이 된지 오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캔터는 이한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융숭한」 대접에 만족을 표시한 뒤 「한국 자동차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말을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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