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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46주맞는 노병 강태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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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46주맞는 노병 강태수씨

입력
1996.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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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두팔 두다리 조국의 가슴에 묻었노라”/「독수리고지」 탈환전서 포탄 중상/재활위한 또다른 싸움끝에 “자립”/옛 전장서 안보강사 활동 “육탄용사 충혼비 완공이 바람”임진강을 낀 채 북한군과 1㎞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는 중부전선 최전방 육군 태풍부대내 태풍전망대. 1급 중상이용사 강태수씨(65·경기 연천군 연천읍 상1리)는 6·25 46주년을 하루 앞둔 24일에도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던 이 곳을 찾았다. 전쟁 당시 「독수리 고지」로 불렸던 이곳에서 그는 두 팔과 두 다리를 조국에 바쳤다.

「독수리고지」는 노병에게 평생 전쟁의 상처를 남긴 곳이자 그가 상흔을 딛고 꿋꿋이 일어서게 한 「고향」같은 곳이다. 91년 태풍전망대가 일반에 공개되면서 안보강사를 자청해 맡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는 이곳에 올랐다. 이날도 그는 갈 수 없는 고향땅을 먼 발치에서나마 보려는 실향민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안보관과 통일에 대비한 자세 등에 대해 강연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53년 7월, 중대장이었던 그는 중서부전선의 전략요충지인 이곳 독수리고지와「노루고지」탈환작전에 중대원 1백80여명을 이끌고 참전했다. 하루에 ㎡당 4천5백여발의 포탄이 쏟아졌던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강씨는 무려 17차례의 파편제거 수술을 받고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했다.

불구의 몸으로 제대한 강씨에게 사회는 냉혹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껌팔이, 주유소 심부름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좌절에 빠진 강씨가 자립의지를 다진 것은 전쟁의 상처를 극복 못하고 주저앉고만 주변 상이용사들의 삶을 목격하고부터다. 강씨는 전투에 임한 듯한 피나는 노력 끝에 의수족으로 글쓰기와 운전을 익혔다. 어느 정도 자립기반이 잡힌 후 강씨는 지역사회로 눈을 돌려 연천군 상이용사회원 적금통장 만들기 운동 등 상이용사 돕기 운동을 벌여 새 삶의 터전을 일구어 주었다.

81년부터는 지역단체, 군부대, 학교 등지를 돌며 무보수 안보강연에 나섰다. 지금까지 강연한 횟수만 해도 2천여회. 누구 못지 않은 안보 전문가가 됐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단 한가지. 93년 뜻있는 주위사람들이 주선해 기공한 전망대 앞 「육탄용사 충혼비」의 완공을 생전에 보는 일이다. 충혼비 건립은 자금이 부족해 94년부터 공사가 중단됐다.<중부전선=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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