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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연극」 일깨워준 김초혜 시­연극인·국립극단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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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연극」 일깨워준 김초혜 시­연극인·국립극단 지도위원

입력
1996.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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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서 갈등·방황하던 시기 큰 위안내가 김초혜 시인의 연작시집 세 권을 항상 나의 무대를 지켜보아 주는 팬 권경희씨에게서 선물받은 것은 어느 해인가 생일때였다. 이후 그 시집 세 권은 항상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소속단체 내에서 뜻밖의 일을 경험하게 됐다. 한 연극집단의 위계질서가 붕괴위기에 놓인,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던 거다. 삼강오륜이 구시대의 유물화해 버린 지금, 사회에 별의별 병폐가 끊임없이 일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른바 신분상승이라는 병이고 그 병의 증세는 몸치장하고 차 몰고 명함 뿌리러 동분서주하며 어느 장소에서나 설쳐대며 안하무인격으로 허장성세를 일삼는 짓이라 한다. 지성의 표상인 연극집단에서 벌어지는 그런 행위는 집단의 기강과 단우, 선·후배간에 지켜야 할 일말의 예의마저 무시되는 행위, 대외적으로도 망신스러운 행위이다. 신분상승이라는 게 과연 그런 행위로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제 아무리 자유분방을 추구하는 시대에 산다 한들 지켜야 할 일을 어기는 것은 공해다. 쉬운 예로 교통질서를 어기면 자신은 물론 남에게 해가 된다. 모두가 정지된 붉은 신호등에서 유독히 달리는 차가 있다면 그것을 우러러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를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상이 아닌 사람! 그런 사람과 섞여 사는 것은 고통이다. 내가 배우고 지켜온 질서의 존엄성이 하찮게 짓밟히는 그런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을 투신한 그 집단에서 탈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려 50년, 나의 얼이 뿌리박힌 그 터전을 그렇게 떠나야 할 것인가? 비장한 결단을 놓고 갈등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것이 김초혜시인의 「사랑굿 113」이었다. 어느 평자가 말했듯이 그 시인의 관심은 삶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초월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행동적이기보다 구도적이요, 윤리적이기보다 존재론적이다. 그렇다. 나의 갈등은 끝났다. 나에게 연극은 삶의 본질이요, 나의 의지를 구도적으로 형상화시킨 나의 영혼, 나의 사랑이다. 누구에 의한 것도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나의 사랑 연극. 그것은 그 무엇에도 견디어 낼 수 있는 내 의지의 형상화이다.

나는 「사랑굿 113」을 외우면서 휘청거리던 나의 의지를 그렇게 굳건히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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