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대권게임의 희생양/앙숙 레베드 도약보며 속쓰린 하차파벨 그라초프 전러시아국방장관(48)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정권에서 최장수 각료였다. 구소련 붕괴후 끝없이 이어진 격동의 역사를 반영하듯 러시아 정부의 각료들은 수없이 교체됐지만 그만은 군내 부정부패와 개혁요구, 체첸공격 실패 등 많은 인책 사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켜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구소련공산당 강경파가 시도한 91년 8월 쿠데타때 옐친 당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사수하던 벨로이 돔(의사당) 공격 명령을 거부, 옐친편으로 돌아섰고 2년후인 93년 10월 러시아 의회보수파들의 정권전복 기도시 군의 정치적 개입을 꺼리는 장성들을 설득해 의사당을 포격, 옐친의 정치생명을 구한 인물인 것이다.
이렇듯 「침몰하지 않는 인물」로 보이던 그라초프도 6·16대선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1차투표에서 15%의 득표율로 결선투표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알렉산데르 레베드의 영입조건으로 해임됐다. 군의 부정부패와 개혁문제를 놓고 사사건건 다퉈 온 레베드의 화려한 정치무대 데뷔의 희생양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라초프는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정치적 운명에 크게 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 재임 4년여 동안 군부내에 구축해 놓은 「그라초프 군마피아」가 그의 해임을 반대하며 쿠데타를 기도한 것으로 전해진 것이 그의 반발 강도를 엿보게 한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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