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노사갈등 자동차·기계 등 주력산업 확산/급속한 경기냉각·수출부진 상황에 “또한번 치명타”/“국제수지적자 증폭·물가상승·성장둔화” 최악 우려노사분규의 회오리가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노사갈등의 바람이 자동차 기계 조선등 대형 산업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힘겹고 불안한 내리막길을 달려온 우리 경제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현재 파업중이거나 사실상 파업상태인 자동차관련 업체는 만도기계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에이피등 많지는 않지만 조업중단 및 분규는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다. 만도기계파업으로 부품공급에 차질이 생긴 현대자동차의 노조는 이미 생산라인가동을 일부 중단시킨 가운데 그룹계열사 노조연합체인 현총련과 연대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곧 쟁의결의일정이 잡혀있고 쌍용자동차도 21일 파업찬반투표를 예정하고 있어 자동차업계는 사실상 전면파업의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 한국중공업 현대중공업이 쟁의발생신고를 냈고 효성중공업도 쟁의신고 및 쟁의결의를 마쳐 자동차 파업 파장은 금명간 조선 기계등 대형산업현장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이미 주철관업체인 우민주철, 농기계업체인 동양물산 대동공업, 건설업체인 삼환까뮤등 전국적으로 12개업체에서 노사분규가 진행중이다.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관련 3사의 파업으로 인한 완성차업계의 하루 손실액은 1,100억원대으로 추산된다. 관련부품업체의 생산손실까지 합하면 하루 손실액이 2,000억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연쇄손실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노사분규가 몰고 올 국민경제적 후유증은 이같은 계수적 손실액을 훨씬 능가한다.
자동차는 반도체 가격붕락으로 빨간불이 켜진 우리나라 수출전선에 사실상 마지막 「버팀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동차는 올들어 5월말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6%가 늘어난 43억8,000만달러어치를 수출, 전체 수출신장률(14.2%)을 압도하며 반도체 철강의 상대적 부진에 따른 수출공백을 메워주고 있었다. 만약 노사분규가 부품 및 완성차업계 전체로 확산될 경우 70억∼80억달러로 상향조정된 국제수지적자 억제선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며 기계 조선등 다른 간판수출업종마저 분규회오리에 휘말린다면 수출과 국제수지는 사상최악의 결과를 연출할 것이 분명하다.
공공부문에서 산업현장으로 도미노적으로 번지는 올 노사분규는 무엇보다도 현정부 출범이후 뚜렷이 정착됐던 노사안정기조를 반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되고 있다. 노사갈등이 한창이던 88년 3,207건에 달했던 쟁의발생건수는 현정부 출범 원년인 93년에 1,160건으로 줄었고 94년 898건, 작년엔 711건으로 감소했다. 분규발생건수도 88년 1,873건에서 93년이후 144, 121, 88건으로 격감했으며 특히 종업원 1,000명이상 대형사업장 분규는 93년 31건에서 작년엔 12건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의 평화가 노사안정의 구조적 정착 아닌 단순한 잠복기였음이 확인됨에 따라 현재 야심차게 진행되고 있는 노사개혁도 적잖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노사분규의 확산속도만 본다면 최근의 모습은 민주화바람속에 전국의 산업현장을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80년대말을 연상케 한다. 물론 갈등의 내용이 단순한 임금투쟁에서 복지수준확충 해고자복직등으로 다양해졌고 특히 민노총 출범에 따른 노동계 내부의 구조변화가 반영된 점도 있지만 분규의 국민경제적 충격은 결코 80년대말보다 약하지는 않을 것 같다.
80년대말 노사분규는 고금리 고지가와 함께 우리나라의 악성적 고비용구조를 형성하는 고임금을 낳는 직접적 원인이 됐다. 86∼88년의 3저호황에서 비롯된 두자리수의 고도성장, 연평균 100억달러가 넘는 국제수지흑자의 과실은 ▲노의 과도한 임금인상요구와 ▲사의 재투자마인드 실종 ▲정부의 방관자적 태도와 정책실패속에 경제의 「거품」만 부풀리고 말았다. 고임금은 고물가를 낳았고 고물가는 다시 고임금을 강요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결국 근로자들은 「쟁취한 임금」을 인플레에 빼앗기고 말았다. 극심한 싸움을 벌였지만 노사 모두 손실만 입은 전형적인 「네가티브 섬 게임(Negative Sum Game)」으로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현재의 노사분규가 비록 임금인상공방 단계는 넘어섰지만 후유증은 80년대말보다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당시는 대호황으로 커진 「파이」를 누가 차지하는가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급속한 경기냉각속에 「파이」자체가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강화 과제는 산적해 있고 물가 국제수지등 경제여건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파업이 산업현장 전체로 파급된다면 ▲생산차질에 의한 성장둔화 ▲수출위축에 따른 국제수지적자증폭 ▲임금상승 및 사회불안에 따른 물가상승등 우리 경제는 단 한마리의 토끼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이성철·황유석 기자>이성철·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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