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러시아 대통령 선거는 러시아 사상 처음으로 직접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최고 통치자를 선출한다는 의미가 있다. 옐친대통령이나 주가노프공산당 당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러시아가 과거의 제정러시아나 공산독재의 공포정치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을 만큼 시대의 조류가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러시아 국민이 이 세기적 개혁에 성공해 자유와 평화의 바다에 합류하기를 바란다.16일 실시된 선거는 과반수 득표자를 내지 못해 다음달 7일의 2차 결선투표에서 당락을 가리게 됐다. 1차 투표 결과는 옐친대통령이 주가노프공산당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1차투표에서 15% 정도 득표한 레베드장군의 향배가 판세를 결정할 전망이다.
범죄단체를 소탕해 문란해진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군 개혁을 통해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것이 레베드의 정치표어다. 레베드의 이 강렬한 슬라브민족주의는 그가 어느 후보와 손을 잡든 간에 앞으로 러시아의 국내외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대러시아외교가 그전처럼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4자회담 제의때 러시아와 사전 조율과정을 거치지 않고 회담당사자에서 배제한 것은 우리 외교당국의 실수였다.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전부터 우리에게 섭섭했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올림픽을 지원하고 한국과 앞장서 수교했는데 그 후의 대접이 정치외교적으로나 무역 투자면에서 중국과는 너무나 차별이 심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그 불만의 표시로 북한에 부총리급 경제사절단과 의회대표단을 보내 관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예전같은 동맹관계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남북간에 균형을 맞춘 등거리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우리측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옐친대통령이 1차투표에서 공산당후보 주가노프에게 앞선 것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주가노프의 당선은 북한을 고무시킬 것이 분명하고 나아가서는 중·러·북한 공산정권의 연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세력균형과 남북관계, 북·미접근 전반에 큰 변동을 의미한다.
주가노프의 당선은 또 11월의 미대통령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강경보수의 밥 돌 공화당후보가 이긴다면 동아시아에는 과거의 냉전시대에 못지 않은 긴장기류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러시아 대통령선거를 주시하는 우리의 관심도 여기에 있다. 7월 결선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만한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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