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에 주목/PD계 학생운동 주교재로 사용루이 알튀세르(1918∼1990)는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로 불리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를 다진 창시자이다. 그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강조한 그람시, 루카치등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고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했다. 60년부터 64년까지 프랑스의 좌파 월간지에 발표한 글을 모아 67년에 엮어낸 「마르크스를 위하여」는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청년기와 완숙기로 구분하고 두 시기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주장했다. 알튀세르는 인간은 사회를 이루는 각종 구조적 층위에 의해 규정된 존재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을 규정하는 「구조로서의 이데올로기」에 주목했다. 그는 영어판 서문에서 『나는 결코 사회적 실재로서 이데올로기를 비난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인간이 계급갈등을 의식하게 되는 것, 그리고 끝까지 투쟁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켜 60년대 후반 「이데올로기적 억압기구로서의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즉 국가를 억압적 국가기구(군대, 경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족 노동조합 교회 학교 언론등)로 구분하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계급투쟁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공산당의 이론가로 활동했던 알튀세르의 저작은 국내에 소개되면서 PD(민중민주주의혁명론)계의 주교재로 사용됐지만 용어의 애매함과 현란한 논리 때문에 접근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알제리 비르망드제에서 태어난 알튀세르는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과학철학자 바슐라르의 지도를 받아 「헤겔철학에서의 내용개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의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일생동안 숱한 정신분석 치료에 시달리다 끝내 80년 정신착란상태에서 아내를 교살하는 비극을 저질렀던 「저주받은 지식인」이었다.
그의 광기는 제자였던 미셀 푸코의 사상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마르크스…」는 백의출판사에 의해 90년 국내번역, 소개됐다.<박천호 기자>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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