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놀이」와 성폭력(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놀이」와 성폭력(장명수 칼럼)

입력
1996.06.14 00:00
0 0

5월29일 이화여대 개교기념 축제에 고대생 수백명이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든 사건에 대해서 이화여대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총학생회와 범이화인 학원폭력 대책위(간사 전길자 학생처차장)는 고대측의 공개사과와 관련학생 처벌, 재발방지 약속, 이번 사건과 관련된 피해보상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고대생들이 수백명씩 이대 축제에 몰려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부터인데, 최근 몇년사이 폭력성을 띠기 시작했다. 고대생들은 자기학교 응원가등을 부르며 행사를 방해하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폭언을 퍼붓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기물이 파괴되거나 이대생들이 다치는 일도 있었다. 고대측에서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같은 소란을 잘 알고 있었으며, 고대 총학생회와 복학생협의회 명의로 『그같은 난동은 민족고대의 수치』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적도 있다.

93년에 발표된 성명서는 고대생들의 운동장 점거, 이대생들에게 내뱉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줄다리기에 뛰어들어 난장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학생들에게 가한 폭력등을 낱낱이 열거하면서 이대에 사과의 뜻을 전하고, 난동 가담자들을 색출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고대 총학생회는 올해도 그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단체행동을 자제시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의 소란은 더 심했고, 이대생 한명은 팔이 부러지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이대의 학생과 교수들은 이같은 고대생들의 집단행동이 단순한 장난기를 넘어서 성희롱과 성폭력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규탄하고 있다. 고대생들은 여자대학의 축제에 동참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학생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휘두르며 남성 패권주의를 행사하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고대에서도 그같은 고대생들의 행위가 성희롱·성폭력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한 TV특집에 나온 남녀 고대생들은 한결같이 『고대생들의 난동은 부끄러운 일이고, 그런 짓은 놀이가 아니라 폭력이며, 힘이 약한 여대생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성폭력』이라고 말했다.

불상사가 일어나긴 했으나, 두 학교 학생들의 생각은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학교의 차이나 성별의 차이를 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토론하는 젊은이들의 세계는 희망적으로 보인다. 고대는 시간을 끌지말고 이대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 길만이 일부 학생들의 수치스런 치기를 빨리 덮을 수 있을 것이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