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검문소 마음만 먹으면 넘는다”/무비자 캐나다 거쳐 브로커비 1인 18,000불선/영주권 빌리거나 차 트렁크 숨어/감시 카메라 무용 “넉달간 1,500명 성공” 추산미국사회에서 반이민무드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를 통한 한국인들의 미국 밀입국이 성행하고 있다. 한국인 밀입국자들은 94년 5월 한국과 캐나다 정부가 맺은 무비자 협정이후 캐나다로 일단 들어와 허술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오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캐나다 미국에 거점을 둔 전문 브로커 조직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으며 올해에만 4월말까지 1,000∼1,500명이 비합법적인 미국행에 성공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캐나다―미국의 서부 국경지대와 밀입국자 수용소를 르포, 밀입국 실태와 문제점등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편집자 주>편집자>
캐나다 밴쿠버시와 미국 워싱턴주를 잇는 미국 북서부의 블레인 국경검문소는 여느 고속도로 톨 게이트와 차이가 없다. 3차선 도로마다 2대의 감시카메라가 차량의 앞뒤를 찍어댔지만 근무자들은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검문소는「피스 아치」공원에 감싸인채 서쪽으로 태평양과 연결되는 조지아 해협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공원 복판에 우뚝 서 있는 관문의 「양국 형제는 의좋게 살고 있다」는 글귀처럼 북쪽은 캐나다, 남쪽은 미국이 관리한다. 이 공원에는 검문소를 제외하고는 양국간 통행에 아무런 장벽이 없다.
한때 밀입국에 관여했던 밴쿠버 교민 K씨(42)는 『이 일대는 최근까지 한인들의 주요 밀입국 통로였으며 지금도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밀입국 방법은 간단하다. 미국인들이 한국사람을 쉽게 구별못하는 점을 이용, 밀입국자와 비슷한 용모를 가진 캐나다나 미국 교민들의 영주권등을 빌려 검문소를 통과한다. 이렇게 미국에 들어오는데도 브로커에게 1인당 평균 1만8,000달러를, 위험부담이 큰 가족은 1인당 몫에 별도의 추가비용을 줘야 한다.
차 트렁크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밴쿠버에 사는 L씨(34)는 『친지를 트렁크에 싣고 검문소를 두차례 통과했다. 처음에는 떨렸지만 싱거울 정도로 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주 타코마의 P씨(25)는 3월초 부인을 트렁크에 싣고 국경을 건너다 적발됐다. 영주권자인 P씨는 지난해 한국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비자를 받으려면 최소 3년은 기다려야 하는 부인을 이 방법으로 불러들이려다 실패한 것이다. P씨는 수용소로 직행했다.
또 캐나다측 한국인 브로커가 밀입국자들을 공원으로 안내한 뒤 미국에서 온 브로커와 함께 어울려 산책을 하는 척하다 해질무렵 그냥 미국땅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K씨는 『이들은 보통 5∼10명 단위로 행동하며 미국측 공원 주차장에 미리 대기해 둔 미니버스나 승용차로 200㎞ 떨어진 시애틀로 직행한다』고 설명했다.
밀입국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 정부가 이처럼 국경을 허술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검문소에서 1㎞쯤 떨어진 미연방 국경순찰대 블레인지구를 방문하면서 의문은 풀려나갔다 블레인지구 대장 존 마타씨(49)는 『한국인들의 밀입국은 94년 하반기부터 급증하고 있지만 인력부족으로 감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워싱턴과 오리건주를 관할하는 블레인지구에는 순찰대원이 50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22명은 멕시코 접경지대로 차출돼, 28명이 한국의 휴전선보다 긴 국경을 3교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마타 대장은 『한국인 밀입국자는 올해 4월까지만 114명이 붙잡혔다. 10명에 한명꼴로 붙잡혔다쳐도 4개월동안 1,000명 이상이 밀입국에 성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트를 이용해 벨링헴등지로 넘어오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제보를 입수했으나 수백척의 어선을 일일이 단속하는 건 육로보다 더욱 힘들다』고 밝혔다.
실제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미국의 워싱턴주 사이의 많은 포구에는 수많은 낚시 보트들이 아무 통제없이 드나들고 있다. 블레인지구는 지난달 낚시 보트 갑판밑에 숨어 있던 4명의 한국인을 적발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마타 대장은 『밀입국자들은 한국에서「미국이민 보장」등의 광고를 보고 밴쿠버에 도착해 6,000달러를, 시애틀에서 8,000달러 정도를 준다』며 『밀입국조직은 한국과 밴쿠버 시애틀에 각각 거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찰반장인 짐 스미스씨(47)를 따라 둘러본 국경일대는 야산과 체리농장, 말 소의 방목지가 산재한 전형적인 미국 농촌의 들판이었다. 스미스반장은 『검문소에서 동쪽으로 24㎞ 가량 펼쳐진 들판 전체가 밀입국 루트나 마찬가지』라며 『들판 곳곳에 감시 센서와 카메라를 설치했지만 이들이 작동해도 출동할 인력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미국캐나다국경 블레인검문소="이종수" 특파원·김성수 시애틀지사 기자>미국캐나다국경>
◎H씨의 경우/“채무자 찾으려고 수차례 들락날락 적발된 경험있지만 계속 시도할것”
밀입국자들은 가장 또는 부모등과 상봉하기 위해 미국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제사범과 이들을 찾아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억원대의 빚을 지고 도망온 사람을 잡기위해 미국을 들락거린 H씨(35)는 밀입국이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준다. H씨는 95년 2월 LA에 사는 친구들의 말을 믿고 무작정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검문소에서 다리에 붕대를 감은채『LA에 사는 미국 영주권자인데 친구들과 캐나다에 스키여행을 왔다 부상해 먼저 돌아 가게됐다』고 설명, 아무런 제재없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빚쟁이를 찾는데 실패한 H씨는 4월말 귀국했다가 7월 다시 밴쿠버에 온 뒤 이번에는 캐다나 교민의 영주권을 빌려 국경을 넘었다. 12월말 또 캐나다를 찾은 H씨는 트렁크를 이용하다 적발돼 수용소에 갇힌 뒤 한달만에 한국으로 추방됐다. 보통 추방기간은 1주일이지만 H씨는 적발당시 압수당한 2만달러를 찾겠다며 한달이나 버티다 돌아갔다. 그러나 여권등에 추방흔적이 전혀 남지 않은 H씨는 3일만에 압수당한 돈을 찾기위해 변호사와 상담하려고 캐나다에 왔다 한국으로 곧장 돌아갔다. 5월 중순 다시 캐나다를 찾은 H씨는 빚쟁이를 잡을때까지 계속 미국으로 밀입국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미 워싱턴주 국경순찰대 레이번 국장/밀입국 적발 한국인이 전체 12% 차지/브로커조직 수사중… 감시인력 태부족
미연방 국경순찰대 워싱턴주 밀입국방지 전담책임자인 제임스 레이번국장(59)은 『한국인 밀입국조직은 한국과 캐나다 미국에 각각 거점을 둔 전문범죄집단』이라고 말했다. 레이번 국장은 『한국인 밀입국은 94년 5월 한국과 캐나다 정부의 무비자협정 이후 급증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들의 밀입국 추세는.
『93년 68명, 94년 96명이었던 적발된한국인 수는 지난해 194명으로 늘었다. 올해에는 4월까지 114명이 붙잡혔다. 이는 전체적발 건수의 12%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은 전문 브로커에게 1인당 최고 3만달러를 주고 밀입국을 시도했다』
―전문조직에 대한 수사는.
『조직을 잡는 것보다 재판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증거확보등에 주력한다. 수사에 최소 1년은 걸린다. 한국과 밴쿠버 시애틀 뉴욕 LA까지 연결된 2개의 조직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국의 이민상담소와 여행사, 밴쿠버등지의 여행사들도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더 이상은 기밀유지상 곤란하다』
―캐나다나 한국 정부와의 협력은.
『밀입국자도 국경을 넘기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캐나다 정부가 단속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세관에 밀입국 가능자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 이들을 공항에서 즉시 추방토록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는 마약관련 밀입국자나 밀입국 전문조직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 밀입국자는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방하면 그만이며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한다. 한국 정부가 이들에 대한 자료를 원하면 제공할 수 있지만 요청을 받은 적은 없다』
―서부 국경경비가 허술한 이유는.
『연방정부는 밀입국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멕시코 접경지역인 샌디에이고와 엘패소등지의 감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들 지역을 안정시킨 뒤 다른 곳의 경비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인원보충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멕시코 접경지역으로 차출당하고 있다. 또 검문소 근무를 강화하려해도 주말같이 차량이 밀릴때에는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말라는 압력때문에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블레인=이종수 특파원>블레인=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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