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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계기맞는 ABC제도/박명진 서울대 신문학과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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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계기맞는 ABC제도/박명진 서울대 신문학과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6.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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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창간 42주년을 맞아 신문·잡지 부수공사기구인 ABC협회의 공사에 응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언론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제까지 모든 언론사들에게 성역시되어온 발행부수를 한국일보도 ABC에 보고하고 공사를 통해 조사·확인을 받은 후 이를 일반에 공개하게 되는 것이다. 89년 한국ABC협회 출범이후 회원사간의 이해가 엇갈려 극히 일부 신문사만이 참여함으로써 공사제도가 아직까지 의미있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일보의 참여는 공사제도의 정착에 커다란 힘을 보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부수공사제도의 정착은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정당한 광고요율의 책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언론사와 광고회사의 경영과학화, 합리화를 기할 수 있다는 기능적인 수준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한국언론기업들이 열린 경영, 투명경영을 해나갈 토대를 놓게 된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언론사의 투명경쟁이란 일반 기업에 요구되는 기업정의의 실현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언론사가 사기업이기는 해도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하고 여론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익기구이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사회정의의 실현에 기여하게 된다. 스스로 투명하지 못하고 민주화되지 못한 언론은 그 막강한 힘에 대한 일반의 공포심을 바탕으로 사회 위에 군림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회전반의 민주화를 위해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견제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언론의 장래를 위해서 지극히 바람직한 제도이지만, 기존의 관행 속에 안주했던 언론사들로서는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하는 노력과 탈바꿈을 위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의 일간지들, 특히 중앙일간지들은 불특정 다수를 독자층으로 하여 차별화된 독자층이나, 뚜렷이 구별되는 고유의 색깔도 없이 비슷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독자수의 확대에만 주력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경쟁이 치열해지면 질수록 다른 언론사와 될 수 있는대로 비슷해지는데 총력을 경주해온 것이 실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ABC제도의 정착은 이처럼 양에만 의존해온 경영전략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한다. 발행부수의 공개는 독자수 뿐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인구통계학적 정보의 공개도 수반하게 된다.

그런데 목표수용자를 겨냥한 광고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광고주들로서는 그 수용자층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는 언론사를 찾게 마련이어서 무조건 부수많은 언론사를 선호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ABC제도는 무조건 발행부수가 많은 언론사에게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언론사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하는 언론사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것이다. 소품 다량생산의 시대와 결별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 진입하고 있는 이 시대의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일보는 이제 42살을 갓 넘었다. 언론사의 나이로는 극히 젊은 나이이다. 그 젊은 패기로 제2의 창간을 하는 각오로 한국일보가 걸어야 할 새길을 찾아 헤쳐가는 일이 무엇보다 급한 당면과제일 것이다. 창간일을 맞아 ABC 공사 참여를 결정한 것은 이같은 제2의 창간을 위한 의지의 표명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언론의 선진화와 민주화에 기여하는 생산적인 결정이라 생각돼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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