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학교와 몇몇 외국어고등학교 그리고 대구의 한 실업고교에서 종합생활기록부의 성적올려주기 부정실태가 최초로 불거져 나온 것은 지난달 하순께였다. 학생들의 고교및 대학진학에 유리하도록 중간고사를 쉽게 출제해 고득점자와 1등을 양산한 것이 탄로가 나 해당 교육청이 문제학교에 재시험을 치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이 엄청난 반교육적인 부정행위를 접하면서 설마 그런 학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이 앞섰다. 사회 어느 집단보다 양심과 양식을 중시하는 교직사회라는 신뢰성 때문이다. 「성적올려주기」 부정이 일선학교에서 학교단위로 자행됐다면 그것은 분명히 교육개혁을 뿌리째 뒤흔드는 반개혁적인 행태임이 분명하다.
2세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서의 도덕성을 스스로 포기한 반교육적인 일선 교직자가 극소수에 그치기를 바랐던 것은 그래도 교육자들을 믿어보려는 희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은 어제 조간신문의 사회면 톱 기사를 보면서 물거품이 돼버렸다. 서울 시내 수많은 고교에서 학교단위의 「성적올려주기」식 집단적 부정행위가 예상을 뒤엎고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이 1백95개 인문고교의 중간고사 성적 처리결과를 분석한 것을 보면 성적올려주기 부정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기가 찬다. 고3의 경우 작년보다 평균점수가 10점이상 오른 학교는 수학Ⅱ과목에서 58개교, 국어 45개교이고 수학Ⅰ 42개교나 됐다. 강남의 한 고교는 3학년 문학과목의 경우 자연계 4백3명중 38.5%인 1백55명이 1등이었다. 또 다른 고교는 1등짜리가 10명이상 나온 과목이 17개나 됐다. 이 학교 자연계 문학과목은 평균점수가 작년 69.3점에서 90점으로 껑충 뛰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종합생활기록부제실시에 따라 일선고교들의 「성적올려주기」행태가 얼마나 일반화했는가를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다.
대학들이 고교에서 그처럼 엉터리로 부풀려 기록한 성적을 점수화해 합·불합격 판정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 고교들이 집단이기주의에 휩쓸려 성적올려주기 경쟁을 계속할때 종합생활기록부상의 학생성적에 대한 공신력을 누구도 믿지 않게 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된다면 종합생활기록부제는 시행도 해보지 못하고 그 폐지를 검토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고 보게되는 것이다.
종합생활기록부제는 1차교육개혁 과제중 핵심적인 사안이다. 종합생활기록부제는 교사들의 평가가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제도인 것이다. 남을 평가할때 사사로움이 배제되는 미국과 같은 신용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제도인 것이다.
그러한 제도를 우리처럼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남을 추천하거나 평가하는 일에서마저 사가 통하는 사회에서 충분한 준비기간도 주지않고 시행하려 했으니 엄청난 시행착오를 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류대학 합격자를 한명이라도 더 내야만 좋은 학교로 쳐주고 유능한 교장으로 평가되며 잘가르치는 교사로 인정되는 우리의 사회풍토에서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성적평가를 있는 그대로 하라는 것부터가 무리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공신력을 잃게 된 종합생활기록부제를 그래도 계속 추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교육부는 전국적으로 중학교 2개교·고교 2개교·특수목적고 1개교씩 모두 75개교의 성적관리에 대한 표본감사를 실시한 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의 인문고교 성적관리실태분석 결과로 미뤄보면 「성적올려주기」 부정은 전국적인 현상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종합생활기록부를 대학입시의 전형자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입시제도의 개선이랄수가 없다. 개악 내지는 후퇴가 분명하다. 종합생활기록부제 실시를 그래도 강행할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판단을 교육부가 내려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시작부터 잘못된 일은 빨리 중단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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