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 목적” 시기 등 모양새도 신경/“북사정·국제흐름 총체판단 최종결정”대북 곡물지원 문제와 관련, 기존의 「현금과 쌀 불가」원칙에서 후퇴한 정부는 지원 규모와 시기 등 각론을 놓고 명분과 효과를 저울질하고 있다. 권오기 통일부총리의 7일 청와대 주례보고에도 이 사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민간차원의 대북 곡물지원 불허방침을 유보한데 이어 계속해서 정부차원의 대북지원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해 가능하다는 방침을 여러 경로를 통해 시사해 왔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차원의 대북지원 결정은 이미 내려졌으며 현재는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지원시기에 관해서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과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나라 보다 앞서 지원을 결정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대북 곡물지원 문제를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는 정부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쌀 지원때도 일본에 선수를 쳤다. 더욱이 정부는 우리의 대북 곡물지원 재개가, 국제기구와 국내 종교·재야 단체 등의 여론에 밀려 진행된다는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하고 있다. 반면에 지난해 쌀지원 당시 악화한 국민감정을 고려할때 앞서 나가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지원을, 우리만이 실질적으로 북한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와 북한에 재인식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유엔이 책정한 4,300여만달러의 대북 지원금액이 제대로 모금될 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강하다.
지원 규모에 관해서는 우리의 쌀 재고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등을 감안, 미국등 국제사회의 지원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이같은 관측의 배경에는 그동안 북한의 식량사정이 8월까지 정상배급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대규모 대북 지원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올해 들어 정부의 일관된 견해였다. 또한 곡물과 현금의 대규모 지원은 「한반도내 당국간 대화와 북한의 대남비방 방송 금지」라는 기존의 3원칙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기존 방침과도 크게 어긋난다.
정부는 대북 지원에 대해 슬그머니 입장을 바꾸면서도 「인도주의적 목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은 기존 3원칙이 살아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정부가 추진할 인도주의적 목적의 지원과 기존 3원칙이 선행돼야 가능한 지원 사이의 구별이 어설픈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는 3원칙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도록 발표시기, 규모 등의 모양새를 갖추는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 식량사정에 대한 평가와 국제사회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판단해 지원 규모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문무홍 통일원통일정책실장이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민간차원의 곡물지원 허용을 시사할 때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에 따른 월드컵 열기속에 정부의 입장 변화가 파묻혀 버렸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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