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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여는 국회답게 최선”/국회의장 내정 김수한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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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여는 국회답게 최선”/국회의장 내정 김수한 의원

입력
199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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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대변인 7년8개월 기록 6선… 한때 소석계15대국회 전반기의 국회의장에 내정된 신한국당의 김수한 의원은 4일 『15대 국회는 21세기를 여는 역사적 소명을 안고있다』면서 『의장으로 선출되면 국민기대에 어긋나지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요지.

―의장에 내정된 소감은.

『의장은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는만큼 지금은 의장후보일뿐이다. 의회주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의원들의 투표절차 이후에 소감을 말하겠다』

―15대 국회를 이끌어갈 구상은.

『15대 국회는 21세기를 여는 국회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본다. 국민기대에 어긋나지않게 국회를 운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동안 의정활동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10대때 서울 관악구에 출마,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했는지를 자문해보면 아쉬움과 의문이 남는다. 다만 국회 최다발언 횟수를 기록, 왕성한 의정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자부한다』

김의장내정자는 야당가에서는 명대변인의 맥을 이은 정치인으로 통한다. 노정객들은 최장기간 야당 대변인을 맡은 김내정자의 활약을 반추하면서 『김의원은 일성이라는 아호처럼 직설과 풍자의 달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야당이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입」밖에 갖고있지 못하던 60∼70년대 김내정자는 그 「입」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내정자는 66년 해위 윤보선 선생이 총재로 있던 신한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67년 해위선생이 민중당과 신한당을 통합, 신민당을 창당한 뒤에도 대변인을 맡았다가 그해 7대국회에 전국구로 원내에 진출했다. 그후 그는 4차례나 대변인을 역임, 무려 7년8개월의 대변인 기록을 세웠다.

김내정자는 70년대 중반 유진산계보로 들어가 당시 원내총무인 김영삼대통령과 인연을 맺기시작했다. YS는 김내정자의 합리적 사고, 조리에 맞는 언변을 높이 평가했으며 김내정자는 YS의 선굵은 스타일에 매료됐다는 후문이다. 이후 그는 YS―DJ의 치열한 경쟁에서 상도동계보를 택했고 90년 3당합당때도 YS의 뒤를 따랐다.

그 인연이 결국 15대 국회의장으로 발탁되는 결정적 동기가 된 셈이다. 그는 10대때(78년)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는 등 70년대 후반 야당가에서 화려하게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좌절과 우여곡절도 있었다. 한때 소석 이철승씨에게 기울어 「처신이 애매하다」는 평이 따라다니기도 했고 13, 14대때 내리 이해찬 의원에게 고배를 마시는 불운을 겪기도했다.<이영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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