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 경기 60분만에 중단은 부당” 강조/흥분하는 아벨란제와 담판 철회 관철월드컵유치까지는 몇차례의 고비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중반 돌출했던 개최지조기결정론의 등장은 심각한 위기상황의 하나로 꼽혔다. 상승세를 타고 있던 우리로서는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튀어나온 조기결정론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일 프로축구연맹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정몽준회장은 조기결정론이 처음 등장한 시점을 지난해 5월말로 기억했다. FIFA집행위원회가 열리고 있던 스위스 취리히에서 집행위원들을 상대로 유치활동을 벌이던 정회장은 회의안건에 조기결정문제가 포함돼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조기결정론은 다름아닌 고도의 일본측 전략이라는 생각이 정회장의 뇌리를 스쳤다. 한국이 충분한 득표력을 확보하기 전에 개최지를 결정할 경우 일본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조기결정론이 나오기 직전 잠시 혼선을 보였다. 일본 고위인사가 우리측에 『공동개최가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일본측은 공동개최논의가 불거지자 곧바로 주한대사를 우리측 유치위 고위인사에게 보내 『일본의 확고한 입장은 단독개최』라는 내용의 정부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따라서 갑자기 등장한 조기결정론은 일본의 이같은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우리 입장에서는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조기결정을 한다고 하면 총선에 대한 영향을 우려하는 정치권이 분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재빠르게 대응방안을 모색하던 정회장은 일단 블래터FIFA사무총장을 찾았다.
정회장의 거센 항의를 받은 블래터사무총장은 『한국은 희망하는 것으로 알았다』면서 겸연쩍은 반응을 보였다. 블래터사무총장은 『일본도 싫다고 하더라』고 말하면서 회의안건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집행위회의에서 아벨란제 회장은 이 안건을 정식으로 상정했다. 정회장은 내심 긴장했다. 반대의사를 강하게 표명할 경우 다른 집행위원들에게 우리측이 약하게 보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정을 언제 해도 상관없지만 그렇게 해선 페어플레이가 되지 않는다. 90분간 하기로 되어있는 축구경기를 60분만에 중단한다거나 골(GOAL)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회장의 반론에 일부 집행위원들도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면서 거들기 시작했다.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회의는 끝났다. 정회장이 회의장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조기결정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났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일본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정회장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집행위원도 없는 일본측이 어떻게 회의안건을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심할 수 없었던 정회장은 주변의 집행위원들에게 이날 회의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결론이 안났거나 거부당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귀국한 정회장이 외신을 통해 접한 소식은 정반대였다. 아벨란제회장이 『조기결정문제는 전적으로 내게 위임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며칠후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 참석한 정회장은 다시 블래터사무총장에게 항의했다. 그는 『회장이 빼지 않는데 어떻게 하느냐』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2개월여 지난 95년8월초. 중남미지역에 출장중이던 정회장에게 긴급 팩시밀리 한장이 날아들었다. 서울 사무소에서 급하게 전해준 소식은 『5월 집행위원회의 회의록이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회의록은 『조기결정에 대해 일반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의가 있으면 3일내에 서면으로 답변해 달라』는 추신이 붙어있었다.
정회장은 아벨란제 회장에게 급히 편지를 썼다. 『거의 3개월만에 회의록을 보내주면서 3일만에 회신하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 아닌가. 또 지금은 휴가철이고 나도 외국에 나와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다소 감정까지 섞인 항의에 아벨란제측은 약간 후퇴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10여일 뒤 정회장은 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열린 에콰도르에서 아벨란제회장을 만났다. 귀국하기 전날 정회장은 아벨란제 회장과 담판을 지었다. 한국대사관이 초청한 만찬에 『기자들과의 약속이 있다』며 불참한 아벨란제 회장은 하오 5시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정회장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한국의 새파란 집행위원에 그는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당신은 왜 그렇게 나에게 협조하지 않는가. 당신이 한국에서 국회의원인 모양인데 여기는 스포츠를 하는 곳이지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다』 아벨란제 회장의 흥분은 1시간가량 계속됐다. 자신이 주도한 97년 나이지리아 청소년대회의 취소결정에 정회장이 비협조적이었다는 등의 불만까지 털어놓았다.
정회장은 아벨란제 회장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우리측의 현안을 꺼냈다. 『조기결정은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정회장의 단호한 입장에 아벨란제회장은 한발 물러섰다. 『조기결정을 하지 않을테니 앞으로는 잘 협조해달라』
그후 아벨란제 회장은 9월 스위스에서 열린 FIFA비상위원회의와 12월 파리 집행위원회의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조기결정론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한때 우리측을 바짝 긴장하게 했던 조기결정론은 이런 우여곡절끝에 소멸됐지만 일본의 입김은 마지막 유치결정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정회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표결을 했더라도 우리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승자의 여유인 듯하다.<전상돈 기자>전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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