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어머니역 경험 밑거름/11일간 7,000여명 동원 성공작연극 「어머니」(2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대극장)는 막이 내려도 객석이 비지 않는다. 자리를 뜰 줄 모르는 중년남성들이 멋쩍게 눈시울을 훔친다. 막 뒤로 사라진 주연배우 나문희와 함께 자기 어머니를 극장에 남겨둔듯 관객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그리고 무대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마치 극중에서 나문희가 『그만 놀고 (저승으로) 가자』며 객석을 한번 돌아보듯이. 『무대 한쪽 끝에 앉아 대사를 하면 관객들이 모두 나를 쳐다봅니다. 그럴 땐 사랑방에 앉아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또 어떤 땐 나와 함께 울어 줍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 몰라요』
나문희는 실로 「어머니」의 배우다. 30여년의 연기생활에서 그는 지겨울 정도로 어머니역을 맡아 왔다. 젊었을 때부터 그렇다. 아름답고 비극적인 여주인공같은 역은 기억조차 없다. 지난해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개성있는 할머니연기로 KBS연기대상을 거머쥐기도 했지만 본격 주연작품은 바로 이번 무대다.
『나 글 배왔으면 드라마도 잘 쓸 거야요. 김수현이보다 잘 쓸 거야요』라는 글 못배운 원망, 『연애란 이렇게 하는 거이야』라며 아들에게 때아닌 연애론을 역설하는 장면 등을 나문희는 과장없는 자연스런 연기로 구성해 낸다. 그의 실감연기는 대중정서의 맥을 파악한 작가 이윤택, 섬세한 연기를 짚어낸 연출가 김명곤 콤비와 더불어 11일간 관객 7,000여명을 끌어들이는 성공을 낳았다. 특히 중년 노년층에게 그의 호소력은 크다. 『이게 「바람은 불어도」라고?』하며 극장문을 들어서는 한 노인의 말이 이를 반영한다.
『딸들이 공연이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고 「엄마 끼가 오죽해」하더군요. 안 그래 보여도 딸들은 내 끼를 알아요. 나씨 집안여자거든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평가되는 나혜석씨를 왕고모로 둔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
92년 이윤택 연출 「길 떠나는 가족」에 출연했을 때 「어머니」를 구상중이던 이윤택으로부터 넌지시 제안을 받은 후 나문희는 연극시즌만 되면 늘 마음이 들뜨고 조마조마했다. 정식 제의를 받았을 땐 기쁜 내색을 감추고 방송스케줄을 모두 정리했다. 함경도사투리를 쓰는 친척의 말을 녹음해 듣고 다녔다. 요즘은 기운 떨어질까봐 목욕도 간단히 하며 몸조심이다. 나문희는 필경 어머니의 배우이다.<김희애 기자>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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