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궈치아오)는 중국의 춘추시대 말기 정나라의 재상으로 자는 자산(즈찬)이다. 정은 당시 2대 강대국인 북쪽의 진과 남쪽의 초(추)사이에 끼여 있던 소국으로 항상 두나라의 위협속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때문에 국내 여론도 엇갈려 나라는 멸망 직전에 있었다. ◆이때 재상에 오른 것이 자산이다. 그는 먼저 농업생산을 진흥시키고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법제를 정비하는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이같은 개혁정치를 펴는데 있어서도 그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능란하게 조화시켜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냈다. ◆강한 정치만을 폈다면 국민들의 반발을 사 그의 개혁정치는 중도 하차를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은 바로 외교다. 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국은 강대국의 힘에 눌려 뜻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같은 자세를 떠나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밝히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버텼다. 그렇다고 강하게 나간 것만은 아니었다. 외교관을 양성해 상대국의 정보를 사전에 철저히 수집,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진과 초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 나라의 안녕을 기해 후세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연이은 망명에 4자회담이니 대북쌀지원이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쌀 지원문제만 해도 우리의 주장 보다도 강대국의 압력이 앞서는 느낌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뛰어난 정보수집과 분석을 바탕으로 강온을 겸비한 외교력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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