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의 고민 “운동과 문학사이”/27년 제1차방향전환서 목적의식 드러내/조명희의 「낙동강」구체적 삶에 바탕둔 리얼리즘 충실·계급사상 내세우면서도 “감동적”/이기영의 「농부 정도룡」소작인·지주대립에 제3자 개입·사회개혁운동의 전술·전략 제시객:「일본 강도정치 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 누구이냐」(단재)에 응답하는 문학의 앞자리에 카프문학이 놓였던 것이라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문제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나아갈 지평 확인, 그것에 상응하는 현실의 성숙, 지식인으로서의 작가등이 그것. 코민테른, 도시노동자의 증가, 지식인으로서의 작가 증가 등의 조건이 3·1운동 이후 대두 또는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보겠지요.
주:카프문학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문학개념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A)작품으로서의 문학 (B)운동으로서의 문학 (C)글쓰기로서의 문학. 작가의 책임 하에 쓰여진 것이 (A)이기에 해석(평가)도 유일해야 하는 범주. 이념을 드러내는 문자행위 과정 전체가 (B)인 만큼 선전삐라거나 「벽신문」이거나 심지어 작품 하나 없더라도 문학으로 성립되는 범주. 제멋대로 괴발개발 쓰기가 (C)이기에 독자도 제 멋대로 읽으면 그만인 범주. 이른바 해체주의가 이에 속할 것.
객:카프문학은 (B)범주입니까?
주:좋은 질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리얼리즘계든 모더니즘계든 (A)범주 아니겠는가. 우리 문학사에서 (B)범주의 도입은 카프문학에서부터라고 볼 것입니다. (B)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카프문학은 두 범주의 갈등을 숙명적으로 안고 고투를 겪어야 했지요. 때로는 (B)범주가 우세해야 했지만 끝내는 (A)범주에 수렴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객:예술과 실천이랄까 정치와 문학의 그 상극적 관계의 난점들, 가령 유명한 「내용과 형식논쟁」도 그 일환이겠지요.
주:카프계 비평가 김팔봉이 월평에서 동지 박영희의 소설 「사냥개」(1925), 「지옥순례」(1926)를 혹평한 바 있었지요. 「기둥도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있는 집도 있느냐」라고. 소설은 건축이니까 갖출 것은 다 갖추어야 한다는 논법이지요. 박영희의 반론이 즉각적으로 일어났고 드디어 카프 내의 큰 논쟁으로 확산되었지요.
객:승부나기가 어려웠겠군요. (A)범주(김팔봉) (B)범주(박영희)의 대결이니까.
주:범주끼리의 대결이라는 점에 이 논쟁의 비평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객:그렇다면 승패란 쉽사리 날 수 없었겠네요. 당장 싸워야 하는 마당에 형식을 갖출 틈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명제도 용인될 수 있으니까. 이럴 경우 상식으로는 카프의 조직이 결정권을 행사했겠군요.
주:정확합니다. 카프조직 측에서 박영희쪽을 지지했던 것. 그렇다면 카프조직이란 무엇인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카프문학인 중 이른바 공산당원은 도쿄지부의 이북만을 별도로 친다면, ML당원이자 김팔봉의 친형인 조각가 김복진(법주사 미륵상 조각자) 뿐이었지요(훗날 그는 ML당사건으로 복역한 바 있음). 김복진의 주선으로 내용·형식논쟁은 일단락이 졌지요.
객:코민테른의 지령과는 전혀 무관했습니까?
주:현재까지는 거의 그런 것 같습니다.
객:운동으로서의 문학이 불러들인 갈등은 필시 대중화문제를 몰고 오지 않았을까요.
주:맞소. 당초 카프문학이란, 지식인의 사회개혁(반제·반봉건)운동의 일환이었던 것. 지식인의 이러한 문학운동이란 고도의 수준이어서 정작 해방되어야 할 무산근로대중은 이해할 수도, 읽고 즐길 수도 없지 않았던가. 무산대중에 읽힐 수 있는 문학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카프 내부에서 나올 수 밖에.
객:역시 어려웠겠지요. 김팔봉이 춘향전식의 쉽고 흥미있는 작품을 쓰자고 하면, 소장파들은 그게 오락이지 어디 운동이냐고 반박했을 테고.
주:벽신문이 등장했고, 또한 슈프레히코르(Sprechchor)라는 시운동 형식도 등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특수한 형식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겠지만, 역시 문학과 정치의 관계라면 정도를 걸을 수 밖에. (A)범주에로 나아가기, 리얼리즘의 길.
객:신경향파문학, 무산파문학, 프롤레타리아문학, 카프문학등의 용어들이 있어, 자주 혼선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한데요. 운동의 단계적 전개에 따른 명칭인가요?
주:원래 경향문학(Trenzdichtung)이란 독일 청년좌파들의 용어. 정치적 문학을 가리켰던 것. 여기에 신자를 붙인 것이기보다는, 3·1운동 이후 전개된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라는 뜻으로 박영희등이 1924년 「개벽」에서 사용한 것.
「개인적 향락문화에서 조선현실을 직시하는 사회적 문학」의 뜻.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 무산파문학. 무엇이 무산계급이냐, 이 문제는 소련에서 벌어진 트로츠키와 마이스키의 논쟁에서 보듯, 과도기적 명칭. 이론가 박영희가 신경향파문학이냐 무산파문학이냐를 문제제기한 것은 1927년 2월이었지요.
객:제1차 방향전환(1927. 9) 이전이군요.
주:그렇소. 제1차 방향전환 때부터 카프라는 용어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문학이라는 시류적 용어와 함께 일반화하지요. 카프문학이란 그러니까 뚜렷한 목적의식을 내포한 용어법. 제1차 방향전환을 두고 목적의식기라 부릅니다. 자연발생적 단계와 뚜렷이 구분됩니다. 계급투쟁 목표를 설정함이란 의식적 행위이니까.
객:선생의 저술에서 보면 제1차 방향전환 때부터 카프의 집행부를 비롯, 회의내용도 상세히 보고되어 있더군요. 신간회와의 관련 및 카프 도쿄지부와 소장파들의 연결문제도 등장하고….
주:그보다 자연발생적인 신경향문학과 목적의식기에 접어든 방향전환 이후 문학과의 차이, 곧 이른바 창작방법론(지도원리로서의 리얼리즘)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문학과제에 속할 것입니다.
객:조명희(포석)의 단편 「낙동강」(1927)을 이 시기의 가작으로 꼽지 않습니까. 검열에 의한 복자가 하도 심하여 건너 뛰어야 할 대목이 수두룩하지만 그럼에도 감동적으로 읽히던데요.
주:소련으로 이주한 작가 자신이 1930년에 이 복자부분을 복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소련당국의 의혹으로 불행하게 죽었지만 「조명희선집」(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 1959)에서 복원된 「낙동강」을 볼 수 있지요. 앞에서 감동적으로 읽혔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렇던가요.
객:낙동강변에서 낳고 농업학교를 나온 주인공 박성운은 민족주의자. 5년간 만주, 노령, 북경, 상해등지를 다니며 투쟁하는 동안 그의 사상에 큰 변화가 생기지요.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 것. 그렇지만 그는 계급의식만을 독선적으로 내세우지 않던데요.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적 연장으로 계급사상을 내세웠던 것. 요컨대 어느 사상도 인간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보았다고나 할까. 또한 이 작품엔 박성운의 애인인 백정집안 출신의 여교사 로사(로사 룩셈부르크에서 이름을 딴 것)의 등장도 인상적이었으며, 만장을 수없이 거느린 박성운의 장례식 행렬과 낙동강 뱃노래의 대합창도 인상적이었지요. 서사시적 감동이라고나 할까.
주:….
객:한 가지 물어보고 싶군요. 예의 그 복자에 대한 것. 「○○○는 계급이 생기고 ○○○지는 계급이 생겼다」같은 복자는 추측해 낼 수 있습니다. 「다스리」 「다스려」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경우는 추측조차 하기 어렵더군요. 「그러던 터에 ○○○○○○○(7자) ○○○○○○○○○○○○○○○○○○○○(20자)」. 작가 자신이 복원한 텍스트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주:「엎친데 덥친다고」(7자) 「난데없는 이리떼같은 무리가 닥쳐와서 물어 악지르며 빼앗아 먹게 되었다」(20자).
객:목적의식기의 창작방법론이란 「낙동강」같은 것입니까?
주:「낙동강」이 차지하는 창작방법(리얼리즘)의 중요성은, 방금 보신대로 구체적인 삶에 바탕을 둔 원숙성, 다시 말해 예술적 형상화에 있었던 것. 이를 리얼리즘의 원론적 범주라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 범주는 원론으로 작용하는 것인 만큼 어떤 특정한 단계의 창작방법론과 구분해야 되겠지요.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니까.
객:자연발생적 단계에서 목적의식기(제1차 방향전환)로 이행하는 것에 비평사적 의의가 있다는 논법입니까? 원론보다는 시대적 의의랄까.
주:운동으로서의 문학범주에서 보면 그렇지요. 가령 최서해의「홍염」(1927)을 볼까요. 서간도 조선이민이 빚으로 중국인지주에게 딸을 빼앗기자 어느 밤 지주집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지주를 도끼로 쳐죽이지 않습니까.
객:(1)소재는 궁핍한 것 (2)구성은 지주(공장주) 대 소작인(노동자)의 대립구성 (3)결말은 살인방화. 이것이 이른바 자연발생적인 단계의 창작방법론. 요컨대 매개항이 없는 단세포적인 구도. 승산없는 일종의 자폭행위라고나 할까.
주:허무주의가 아니라 승리하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 사회개혁운동이라면 치밀한 전술·전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기영의 「농부 정도룡」(1926)은, 이 점에서 썩 문제적이지요.
객:소작인 대 지주의 대립 사이에 매개인물 정도룡이 끼어드는 구도이겠군요.
주:그렇소. 제3자의 개입이야말로 이후의 창작방법론을 결정한 기본항. 제3항이란 무엇인가. 가령 「농부 정도룡」의 경우 정도룡은 그 마을 출신일 수도 있고 외지에서 들어온 이질분자일 수도 있지요. 이 국외자는 다른 세계에 속했던 만큼 정보도 지식도 월등히 많이 갖고 있기에, 지주의 허점도 농민의 허점 및 그 잠재력도 알고 있지요. 더구나 그가 사회주의사상에 물든 인물이라면 선동자로 군림하겠지요. 그 자신은 희생될 것이고, 대신 농민·노동자의 의식수준은 한 단계 높여질 것이고.
객:선생은 지금 루카치가 말하는 「문제적 개인」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설이 한갓 오락이나 잡스러운 산문이 아니라는 그런 논법 아닙니까.<김윤식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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