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국측에 신병인도설 북·중 자극 우려/범법자 간주 북송·인도주의 사이 고민북한 과학자와 작가의 「북경(베이징) 망명사건」은 북·일, 북·중, 일·중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갑렬씨의 한국 망명요청 사실이 보도된 후 『간접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자세히는 아는 바가 없다』는 식의 흐리기로 일관했다. 그러다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 외무장관이 30일 하오 정씨가 일본 대사관에 찾아 와 망명을 요청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이케다장관은 정씨가 『애초부터 한국망명을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가급적 언급을 피하거나 정씨가 처음부터 한국 망명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최근 북노동당 대표단 방일 연기 소동과 겹쳐 대북관계를 더욱 냉각시킬 우려에서 나온 불가피한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재외공관에서는 정치망명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정씨등의 망명 신청을 거절하고 대신 한국측에 신병을 인도했다면 북한을 자극할 게 분명하고 일본은 북한에 대해 심리적 부담을 져야 한다.
한편으로 일본은 자국내에서의 망명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입조심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형식상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불쾌감을 부인하기 어려워 일본정부는 곤혹스런 입장이다. 올1월 북한 외교관이 주잠비아 일본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한 데 이어 나온 사건이기에 부담감이 더할 수도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 처리문제는 「북송동포」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정부에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는 50년대말 북송선을 타고 귀국한 상당수의 조총련계 재일동포가 살고 있어 정씨와 같은 망명사례가 더 발생할 수도 있다. 그 경우 모든 망명 신청자를 한국에 보낼 것인지, 일본이 받아 들일 것인지는 북송동포문제에 책임이 없을 수 없는 일본정부의 또다른 고민이다.
중국 역시 이번 망명사건으로 미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중국은 최근 북한에 식량 2만톤을 제공키로 하는 등 우호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 범인 인도협정을 체결한 상태이며 북한측은 망명자를 범법자로 간주해 줄 것을 중국측에 요구해 왔다. 중국도 북한의 이같은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망명자를 무조건 북한으로 보낼 경우 인도적 차원의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처지다.
이때문에 중국은 북한출신 망명자의 신병을 제3국에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으며 이번 경우도 이같은 방안이 적용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중국과 북한이 큰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북한은 중국에 「재발 방지」차원에서 은근한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북경·도쿄=송대수·신윤석 특파원>북경·도쿄=송대수·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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