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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뚱거리는 경주고속철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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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뚱거리는 경주고속철 어디로 가나

입력
1996.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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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공사비만도 10조7,000억원(93년 불변가격)에 이르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이 경주 노선을 둘러싼 부처간의 이견으로 뒤뚱거리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주 초께 그동안 논란의 초점이 돼온 경주노선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결정,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와 문화체육부의 양측 입장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노선확정 앞두고 건교­문체부안 팽팽한 대결/건교부안­“8.4㎞ 지하화” 공사 1년6개월 연장/문체부안­공기 3년 더 지연 2005년이후 개통/“대구­부산 직통연결” 제3안 대두도

경부부고속철도 사업은 처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 통과노선과 역사의 위치 등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을 미리 감안,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해야 했다. 정부는 뒤늦게 경주 통과 노선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터지자 이제 원만하게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경주노선분쟁의 여파로 경부고속철도는 어떤 노선으로 결론이 나든 공기지연과 공사비의 엄청난 추가부담이 분명해졌다.

경부고속철도는 당초 2001년말까지 공사를 끝내고 서너달의 시험운영을 거쳐 늦어도 2002년 9월의 부산아시안게임 전까지 본격 상업운행을 개시하기로 계획됐다. 그러나 경주통과구간 노선 선정 문제로 짧게는 1년6개월, 길게는 3년 지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건교부 안을 따라 경주통과 구간을 형산강노선 8.4를 지하화하고 역사를 이조리로 옮기는 쪽으로 확정하더라도 공기는 1년6개월 가량의 연장이 불가피하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렇다면 경부고속철도 전구간 개통은 2003년 12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동국대구간 3.5만 지하화하고 역사를 북녘들에 세우기로 했던 92년의 당초안보다 지하화구간이 늘어나고 역사예정지도 이전돼야 하므로 실시설계에서부터 환경 및 교통영향평가, 도시계획 결정, 토지평가 및 용지매수 등을 새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체육부와 문화계, 종교계 등이 주장하는 건천―화천으로 결정할 경우에는 노선 선정에 따른 협의와 측량, 지질조사 등 통상 철도공사에 필요한 7개과정을 처음부터 새로 해야 하므로 역시 공기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약 3년이 더 연장돼 고속철도 개통이 2005년 6월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측 입장의 거중조절에 나선 총리실이나 청와대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공기 지연을 감수하더라도 문화재 보호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에 대한 건교부의 반발도 만만찮아 어떻게 결론이 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부고속철도는 우선 서울―대구만 절름발이 식으로 예정된 공기에 맞춰 운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건교부와 문체부의 갈등, 불가피한 공기지연과 이에 따른 추가공사비 부담등을 모두 감안하는 측은 경주통과를 아예 철회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대안은 대구―경주―부산의 현노선을 변경, 대구―부산을 직통 연결하고 경주, 포항, 울산 등 영남동남부지역은 경전철 등으로 연계, 교통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다. 이 방안은 15일 지식인 77인이 성명을 통해 주장한 바도 있다.

경제성 우선이냐, 문화재 우선이냐, 아니면 새로운 대안인 경주통과 노선 철회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정부의 결정은 임박했다.<윤승용 기자>

◎두 노선주변 어떤 문화재 있나/형산강노선­500m내 중요문화재 21건/건천·화천노선­2㎞내 지방문화재 등 28건

문체부에 따르면 형산강노선이 통과하는 지역에서 발굴이 불가피한 유적은 율동고분군, 석장동고분군등 14곳. 이 중 건교부안대로 8.4㎞를 지하화할 경우 발굴이 불필요해지는 유적을 제외하더라도 월산리 무문토기 산포지등 8곳은 직접저촉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직접적 피해가 우려되는 500m 이내에만 국가지정문화재 1건, 지방지정문화재 1건등 중요문화재가 21건에 이르고, 2㎞이내의 것까지 모두 합치면 101건의 문화재가 산재한다.

건천―화천은 실제 설계된 노선이 아니며 그동안 본격적 발굴이 없었기 때문에 유적현황에는 다소 변동의 소지가 있지만, 역시 신라초기의 문화유적이 다수 분포돼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라가 연맹왕국으로 현재의 경주에 왕경을 설정하기 이전에 사로 6촌의 한 부족을 형성했던 모량부가 있었던 이 일대는 철로가 개설될 경우 화곡리 어련의 폐석곽고분군등 8건 정도가 발굴을 해야 될 곳으로 지목된다. 예상노선 주변 2㎞이내의 문화재수는 국가문화재 2건, 지방문화재 1건, 비지정문화재 25건등 28건으로 형산강노선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변형섭 기자>

◎건교부 입장/“형산강노선 도심우회·지하화로 태종무열왕릉·김유신 장군묘 등 문화유적 훼손 위험 거의 없어”

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에 대한 건교부의 입장은 「정확하게 말하면 건교부안이 아니라 정부안」이라는 것이다.

건교부는 90년 고속철도건설추진위에서 대구―부산을 경주통과노선으로 결정하고 2년여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뒤 92년6월10일 현재의 형산강노선을 확정, 관보에까지 게재했었던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건교부는 그후 문화계등에서 문화재훼손을 이유로 반발이 일자 형산강노선을 지하화하는 것으로 일부 수정했다.

건교부는 형산강노선이 도심통과노선인데다 문화재훼손 위험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현지답사를 해보지 않은 탁상공론이라고 반박한다. 지도를 보면 알수 있듯 형산강노선은 도심에서 4㎞이상 떨어져 강변과 하천, 산등을 따라가는 도심우회노선이라는 주장이다. 문화재훼손 문제에 대해서도 문체부의 건천―화천에 비해 훼손이 적다고 주장한다.

이미 영남대박물관팀이 93년2월부터 4개월간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역, 장산고분군등 주요문화재는 노선에서 700이상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는 것. 또 미미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노선변 500m이내의 문화유적은 석장리고분군등 11개에 불과하며 형산강은 과거 홍수 때마다 범람했던 지역이어서 치수시설이 미비했던 신라시대에는 주거지로 부적합해 문화유적의 존재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68년 실시된 경주시의 경지정리사업시행시 한점의 유물이나 유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건교부는 오히려 문체부의 건천―화천주변에 10여개의 고분군이 밀집해 있어 더 문제라고 주장한다.

건교부는 또 소음과 진동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조사한 결과 TGV가 기존 철도에 비해 진동이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계획노선 500이내에는 돌무지군과 같은 비지정문화재만이 산재해 소음과 진동으로 인한 문화재훼손 위험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경주도심을 관통하고 있는 동해남부선을 시외곽으로 이전, 고속철도와의 연계를 추진해야하는데 이경우 건천노선은 도심에서 15이상 떨어져있어 환승이 어렵다는 점도 들고 있다. 건교부는 이조리역사쪽으로 동해남부선을 이설하면 울산, 포항주민의 환승이 손쉽다는 경제적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윤승용 기자>

◎문체부 입장/“어느곳 통과하든 훼손은 불보듯 역세권 개발 억제등 어떻게 믿나 건천­화천노선 유적보호 고육책”

경주도심에서 15 떨어진 외곽지대(건천―화천)에 선로를 놓고 건천에 역사와 신도시를 건설하자는 「문체부안」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감안한 고육책이자 차선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건교부의 형산강노선에 대한 문체부의 대응논리는 「어느 쪽에 문화유적이 많고 적은가」라는 식의 다툼이 아니다. 천년고도의 상징이자 우리 문화유산의 최대 보고인 경주남산과 왕경지구만은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왕경지구와 남산을 바로 옆에 두고 형산강을 따라가는 건교부노선은 필사코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교부는 반대여론을 고려, 형산강노선중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왕경지구―남산간 8.4㎞를 지하화하고 남산의 경관을 해칠 것으로 지적된 이조리역사도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갖춘 환승역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체부는 개발논리가 최우선 순위로 대두되고 있는 지방화시대에 이같은 다짐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일단 역사가 들어서면 역세권 개발이 자연 발생적으로 이뤄질 것이고 철도역사와 부속시설은 물론, 하루 평균 9만명의 수송을 위한 왕복 10차선의 도로망, 동해남부선의 철도이설 및 중앙선 연결노선의 건설 등으로 남산 일대는 돌이킬 수 없는 모습으로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더라도 지하터널 출입구 등 최소한 5∼6는 지상구간으로 해야 하고 지하를 달리는 고속철도의 진동으로 주위 경관과 매장문화재의 손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화계 일각에선 폭증하는 동해남부권의 유동인구를 수송하기 위해 경주경유노선이 꼭 필요하다는 건교부의 「경제논리」도 수긍하지 않고 있다. 경주노선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수혜지역을 확대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정치논리」가 빚어낸 결과였다는 비판이다. 애초 정책 입안단계에서 문체부가 배제된 것에 대한 지적도 그 때문이다. 93년 감사원의 고속철도건설공단 감사때도 경주경유노선은 대구―부산 직진노선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었다.

어찌됐든 문체부는 지방화시대에 더욱 기세를 부리게 될 개발제일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주노선의 결정 여하는 「문화재는 보존돼야 한다」는 명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변형섭 기자>

◎고속철 추진과정

▲90년6월15일 고속철도추진위에서 대구―부산직통노선 대신 경주통과노선 확정

▲92년6월10일 고속철도추진위 경주경유노선중 형산강노선확정

▲93년6월 문화재위원회 경주외곽노선인 건천노선채택 요청

▲94년10월 문화재관리국 공사예정구간내 유적발굴허가

▲95년3월18일 문체부 건천노선채택 공식요구

▲6월20일 건교부와 고속철도건설공단 문체부에대해 노선변경불가통보

▲8월25일 문화재관리국 경주구간 유적발굴허가취소

▲9월19일 총리주재 관계장관회의서 형산강노선 재검토결정

▲10월9일 감사원의 93년 감사때 경주경유노선이 대구―부산직통노선보다 비효율적이라는 감사결과 나왔음이 뒤늦게 공개됨

▲10월18일 각불교종파와 한국고고학회등 전국102개 단체 「고속철도 경주통과 백지화운동 추진위」결성

▲96년1월15일 국무총리행정조정실 주재 관계차관회의에서 형산강노선과 건천―화천중 최종검토키로 확정

▲3월11일 백지화추진위 17만여명 서명서 청와대제출

▲4월29일∼5월4일 총리실주관으로 문체부·건교부 합동 현장조사실시

▲5월15일 고속철도 경주통과반대 지식인77인 선언. 대구―부산직통이 최선이나 경주를 경유해야만 한다면 문체부안 지지한다고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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