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의 잦은 도발 미 양보얻기 전략/일반 군인들 “굶어 죽기전 결판” 분위기/김정일 권력 완전장악 「승계」 큰의미 없어/최신예 미그29 조립 생산 모두 교체 예정지난 23일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인민군 제1비행사단 57연대 2대대3중대 책임비행사 이철수 대위(30)는 28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공군의 비행훈련등 전쟁준비상황과 식량사정등 북한실상에 대해 폭로했다. 귀순 5일째를 맞아 안정을 되찾은 듯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이대위는 『귀순을 환영해준 남한 민중에 감사드린다』며 다소 상기된듯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이대위와의 일문일답.
―귀순동기는.
『북조선은 지금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 속에서도 군대나 사회 전반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천국이라 선전하면서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대학 문전에도 갈 수가 없다. 군부내에서도 아무리 군사실무에 밝고 공부를 많이 해도 당간부에게 아첨과 굴종,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노동당입당이나 대학추천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부패돼 있다. 식량난 악화로 인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비무장지대에 무장병력을 전진배치 시키면서 전쟁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사회제도 하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이북인민의 실상과 전쟁위험을 알리기 위해 귀순을 결심했다. 귀순후 서울시내를 돌아보고 귀순하기를 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원비행장 도착후 『노동당에 감사한다』는 말을 했는데.
『지옥같은 사회에서 복지사회로 오게된데 대해 비꼬는 투로 말을 한 것이다. 서울에 도착후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그동안의 사상교육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다』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은.
『94년4월30일 김정일의 지시로 기습공격시 공군력 동원능력시험을 위해 인민군내 모든 전투기가 뜬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까지 평북등 후방기지에 있던 전투기 2백70여대를 황남 태탄 인산 통천등 휴전선 인근지역에 전진배치하고 모든 전선에 포탄과 연료등 전쟁물자가 집중공급되는 등 기습공격에 유리하도록 부대기구가 개편됐다. 지휘관도 배짱이 있고 내면성이 강한 젊은 지휘관으로 꾸려지면서 호랑이같은 싸움꾼이 돼야 한다고 교양하고 있다.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비축식량과 기름을 건드릴 경우 지휘관이 군사재판에 넘겨질 정도다. 김정일은 94년 「인민군대는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는 말라.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통일이 가능하다」는 교시를 내렸다. 또 94년 4월30일 인민무력부 작전일꾼들에게 「우리 인민들이 자고있는 사이 공격을 개시, 남조선을 점령해 아침에 깬 인민들이 남조선 점령상태를 확인토록 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등 휴전선 전지대를 돌며 전쟁준비를 독려했다』
―남한점령 계획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은.
『인민군은 개성 문산 서울을 주타격 방향으로 설정, 1단계로 24시간내 서울 한강선, 2단계 대전, 3단계 부산까지 7일만에 완전 점령한다는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보병 2군단과 동부전선 1개사단이 남조선과 유사한 지형에서 작전연습을 했고 전쟁이 눈앞에 있다는 이야기도 연대 정치지도원으로부터 들었다. 7일점령계획의 구체적인 전략과 내용은 모른다』
―군부에 대한 대우는.
『김정일은 여단장급 이상 장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수여하고 군단장급 이상에게는 벤츠등 고급승용차를 선물했다. 특히 비행사들에게는 컬러 TV,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등을 주며 충성을 유도하고 있다』
―군부의 반란·쿠데타가능성은.
『지난해 4월 6군단내 정치지도원등 일부군인들이 남측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6군단이 해체돼 개편된 사건이 있었으나 김정일이 당·정·군을 모두 장악해 반란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안기부는 이사건과 관련, 현총참모장인 김영춘이 지난해 6군단장 재직시 외화벌이 등과 관련된 독직횡령사건을 적발, 김정일의 지시로 포병부사령관과 군단정치위원, 가족등 10여명을 처형하고 군단병력을 완전해체, 타군단에 배속시켰다고 밝혔다).
―귀순당시 상황은.
『귀순하기전 전투기 3대가 비행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앞서가던 2대가 착륙을 준비하는 동안 기수를 남쪽 해주방면으로 돌려 넘어왔다. 해주에서 연평도상공을 지날무렵 뒤쪽과 우측방향에 전투기가 나타나 F16기임을 알았으며 날개를 좌우로 흔들고 다리(바퀴)를 내려 귀순의사를 밝혔다』
―최근 북한군의 도발이 잦은 배경은.
『조(북한)·미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일정한 양보를 얻기 위해 군사분계선에서 일으킨 전략적인 조치라고 정치지도원으로부터 들었다』
―북한공군의 비행훈련과 전투기배치 상황은.
『조종사마다 매년 적용과제 비행횟수 기간등 전투훈련과제가 주어지지만 기름사정이 좋지 않아 할당된 비행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착륙훈련도 석유를 아끼기 위해 지상에서 1백번가량 모의훈련을 한뒤 한달에 2∼3번 한다. 대신에 전투훈련토론회나 지형숙지훈련으로 전투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90년초 러시아에서 최신형인 미그 29기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단계에 있으며 앞으로 전기종이 모두 미그29기로 교체될 예정이다』
―김정일의 주석직승계 시기와 실각시 대체인물은.
『올 7월 김일성의 3년상을 치른후 주석직에 오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김일성이 통일조국을 후대들에게 넘겨주라는 유언을 해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김정일이 이미 북한권력을 완전히 틀어쥔 상태이기 때문에 승계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전쟁에 대한 조종사등 군인들의 생각은.
『이미 많은 훈련을 거쳤고 전쟁이 일어나도 자신있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굶어 죽기전에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전쟁을 통해 결판을 내는 것이 좋다는 사람이 많다』
―북한의 식량사정과 남한쌀 지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가.
『당원이나 장교들은 식량고통을 크게 받지 않고 있지만 인민들은 밀가루나 옥쌀로 연명하는 등 식량난을 겪고 있다. 남한 쌀이 남포항을 통해 1만톤 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남한쌀을 1주일정도 먹어봤으며 일반인민에게 남한 쌀이 공급됐는지는 모르겠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남한내 친지는.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해외망명자 가족은 배반자로 규정, 정치포로수용소등 통제구역으로 보내져 인간이하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어머니(고봉녀·64세때인 92년 사망)로부터 남한에 이모가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이름은 고정숙 또는 고종정으로 알고있다』<정리=김상철·정진황 기자>정리=김상철·정진황>
◎회견장 이모저모/화제의 「발싸개」 “땀 흡수력 장점 때문”/남한 방공망 평가 질문에 “비밀사항 따로 만나자”
○…이철수 대위의 기자회견장에는 83년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씨(현 공군대령)가족과 지난해 귀순한 잠비아 주재 북한 외교관 현성일씨 부부, 최주활 전북한군 상좌가 나와 회견을 경청했다.
최씨는 25일 결혼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이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기 위해 27일 저녁 급히 상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회견이 끝난후 이대위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귀순을 축하한 뒤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이대위가 귀순 당시 두르고 와서 화제가 됐던 「발싸개」는 양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발싸개」의 장점 때문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대위는 『전체 군대가 「발싸개」를 이용하고 있으며 비행사는 특별대우를 받아 1년에 양말과 「발싸개」를 2켤레씩 보급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위는 『양말을 지급받는데 귀순당시 왜 「발싸개」를 했느냐』는 질문에 『「발싸개」가 땀 흡수력이 좋아 착용했다』고 말했다.
○…이대위는 회견도중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비밀사항』이라며 대답을 회피,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대위는 『귀순 당시의 경험으로 남한 방공망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남조선의 탐지체계에 대해서는 비밀사항이므로 나중에 따로 만나 질문해줄 수 없겠느냐』고 받아 넘기는 여유를 보였다. 이대위는 또 『전쟁 발발시 자신의 대남 공격 목표와 임무를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남조선 군사대상물은 비밀사항 아니냐』며 대답을 피했다.
○…기자회견장에는 내외신 기자 1백50여명이 나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이북 5도민회 등 실향민 1백여명이 참석해 회견과정을 지켜봤다.
안기부측은 사진기자들의 과열취재에 대비, 이례적으로 단상 좌우편에 붉은색 테이프로 포토라인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또 남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 10명이 나와 회견장 입구에 검색대를 설치, 출입자를 일일이 검색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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