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4자회담 제의후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언제쯤 공식반응을 보일 것이며, 수락할 경우 어떤 조건을 들고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4자회담안을 설명하는 남북한과 미국등 3국모임에 대해 한국참여의 거부를 선언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따지고 보면 북한이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에서만 설명을 듣겠다는 태도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92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이후 일관되게 견지해 온 「한국배제―미국과의 직접협상」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또한 4자회담안에 대해 장고하면서 극심한 식량난에 대한 국제사회의 걱정을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러시아와 중국등 과거 공산형제국들의 대북식량지원 움직임에 차츰 고무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때마침 클린턴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오는 빌 리처드슨의원의 평양방문, 그리고 뒤 잇는 카터센터의 식량조사단의 방문등을 대미협조무드로 선전·활용하고 대신 미그 19기 귀순과 관련, 남한에 대한 반발감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번 제주도에서의 한·미·일 3국정책협의회에서 합의, 제의한 4자회담의 대북 설명회는 북한의 한국거부로 미국측에서만 설명을 듣게 되는 결과가 될듯하다. 이럴 경우 한국 정부의 입장은 본의 아니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경계해야 할 것은 기껏 4자회담이란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논의의 길을 제의했음에도 자칫 북한의 한국 배제전략을 계기로 미국이 대북 직접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대북식량지원면에서도 본의 아니게 국제적으로 고립될 여지가 적지않다. 즉 북한식량난이 위급상황이 아니라는 우리측 관측에 관계없이 유엔식량평화계획은 체제붕괴 내지 혼란까지 거론하며 긴급지원을 주장, 내달말 제네바에서 유엔 대북식량지원회의에 한국참석을 초청했고 또 미국과 일본도 한·미·일 공조와 관계없이 기회만 있으면 식량을 지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동족에 대한 비인도적 입장으로 몰릴 여지가 있어 어떠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듯하다.
정부는 대북문제가 국내 문제이자 국제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4자회담설명회의 경우 미국이 한국과 사전 사후 협의아래 설명하고 장차 본회담은 남북이 주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쌀문제는 북한이 실태조사와 배급의 투명성 보장을 약속할 때 지원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 또 민간단체의 지원은 가급적 허용하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한다.
미그기 귀순은 분명 북한의 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호기(호기)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성과」 「승리」로 흥분하는 것은 금물이다. 북한에 대한 자극보다 스스로 문을 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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