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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짐승」 되는 사람들/임종건 전국부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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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짐승」 되는 사람들/임종건 전국부장(메아리)

입력
1996.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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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하도 흔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죽어서 「짐승」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살인 강간 가정파괴범 등 대개의 흉악범들이 그런 낙인을 받는다. 그 대열에 가정폭력범이 끼었다. 얼마전 경기도 광명에서 발생한 이른바 「모정녀정」사건의 죽은 사위가 그다.오죽했으면 칠순의 장모가 사위의 가슴에 칼을 꽂았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이 모녀가 당했던 끔찍한 고통에 누구든 동정을 금치 못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이 가정폭력추방 캠페인과 구속된 장모의 석방운동을 벌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몇가지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녀의 진술이나 수사형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알코올중독증세에다 의처증을 갖고 있었고 폭력벽도 거기서 비롯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였다고 할 수 있다. 가정형편 때문이었겠지만 가족구성원들이 그의 폭력벽을 질병으로 파악해 어떤 치료노력을 기울였다는 흔적이 없다. 그의 폭력을 경찰에 신고하는게 고작이었다. 경찰에서 풀려나온뒤 폭력의 악순환만 심화한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살인현장의 모습도 그렇다. 그는 칼을 집어들고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제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사이에 장모가 칼로 찔렀다. 물론 쌓인 원한이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이겠지만 「현재적인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정당방위적인 행동이 아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는 죽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 의해 「짐승」으로 매도당할 뿐이다. 비록 그의 행위가 패덕한 것이었다하더라도 자기변명할 기회가 없는 사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산 자의 인권을 강조하기 위해 죽은 자의 인권을 지나치게 짓밟는 일은 없는지 살필 일이다.

여성단체의 가정폭력추방 캠페인도 피해자의 인권보호에서 한 차원 높여 가해자(그 역시 피해자일지도 모르는)에 대한 사회병리적이고 제도적인 처방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욱 큰 호응과 성과가 있을 것이다. 정부도 이에 관심을 기울여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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