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경쟁대립 “25년 부심”/YS·DJ유신·5공때 JP·군부대항해 “악수”/YS·JP“DJ 고립화” 90년 합당으로 “한배”에/“영원한 적도,동지도 없다” 실감「정치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요즘 여야 대치정국을 보면 이같은 말을 실감케 된다.
김대중 국민회의(DJ), 김종필 자민련(JP)총재는 오는 25일 서울시내 거리에서 함께 신한국당의 야권당선자 빼가기를 비난하는 당보를 행인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이들은 이어 26일 하오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리는 「4·11총선 민의수호 야3당 결의대회」에 나란히 참석, 한 목소리로 「김영삼 정권」을 규탄하게 된다. 장외집회에 이들 두 김씨가 나란히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7년 6월. 당시 야권의 두 거두였던 김영삼(YS) 김대중씨는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손잡고 6월민주항쟁을 주도했다. 그리고 92년 12월 대선에서 당시 김종필민자당대표는 전국을 돌며 김영삼대통령만들기에 앞장섰다. 이번 「보라매집회」를 계기로 3김씨는 결국 다른 두 김씨와 최소한 한번씩은 장외에서 같은 주장을 할 정도로 연대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한국정치의 거목인 3김씨가 협력·경쟁·대립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이끌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70년 야당의 대통령후보경선등을 계기로 태동되기 시작한 3김시대는 지금까지 25년여동안 면면히 이어오면서 부심을 거듭해 왔다.
그동안 3김씨는 공동의 적에 대항, 합종련형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YS와 DJ는 60년대이후 90년 3당합당이전까지 함께 야당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유신시절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2인자였던 JP를 상대로 싸웠고 5공시절에는 군사정권에 대항, 민추협을 만들어 힘을 모았다. 물론 그들은 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맞붙어 DJ가 YS에 역전승을 거뒀다. 또 그들은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모두 출마, 고배를 마셨다. 그들은 92년 대선때 정면대결을 벌여, 결국 YS가 대권의 꿈을 이뤘다.
YS와 JP는 90년 1월 민정, 민주, 공화당이 3당합당을 선언하면서 한 배를 타게 됐다. 노태우대통령과 YS및 JP의 연합은 결국 DJ의 고립화를 의미했다. 그후 내각제 합의각서 파동등으로 YS와 JP의 동거는 순탄치 못했으나 결국 JP는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YS의 손을 들어줬다. 문민정부 출범후 JP는 민자당의 대표로서 활동했으나 여권핵심부가 자신을 흔들어대자, 지난 해 2월 탈당한 뒤 자민련을 창당했다.
DJ와 JP. 이들은 그동안 빙탄불상용처럼 먼 사이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해 6·27지방선거에서 이심전심의 공조체제를 유지했다. 물론 89년 노대통령의 중간평가 유보문제를 놓고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15대총선 이후처럼 본격적으로 협력체제를 구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 궁금한 것은 과연 DJ와 JP의 연대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하는 점이다. 양당의 관계자들은 일단 『이번 공조는 순전히 부정선거규명및 정국주도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야권의 두 김씨가 대권가도에서 내각제등을 고리로 협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김광덕 기자>김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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