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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비극넘어선 계승할 시대정신(언론학자가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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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비극넘어선 계승할 시대정신(언론학자가본 한국일보)

입력
1996.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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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면 부각 앞서 역사적 의미 알려주길우리 언론은 과거의 비사를 캐내는 데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권력의 핵심이었던 대통령 정보부장 안기부장의 뒷얘기에서부터 광복 전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특집들이 심심찮게 지면을 메우고 있다. 방송에서도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가까이 16년 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하나의 기념일로만 치부하고 있다. 5·18은 93년 대통령의 5·13담화를 계기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을 달리 했지만 그 뜻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광주에서만 5·18이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런가?

국회에서 5·18청문회가 열기를 더하고 있던 88년 12월 실시했던 한 여론조사 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5·18 발생원인을 묻는 질문에 「소수 군부세력의 집권을 위한 고도의 술책」이라는 의견이 38.8%,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시민들이 저항했기 때문」이 33.8%, 「잘 모르겠다」가 11.4% 였다. 이를 보면 5·18에 내재해 있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시민정신은 찾을 길이 없고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비극」만 남아있다. 이는 우리 언론이 심은 그대로의 모습이다.

5·18 이후 수년간 언론은 당시의 「처참했던 현장」을 재연하는 데만 전력투구했다. 필자의 극히 개인적인 경험만 돌이켜 보아도 매년 5월이 되면 80년 5월의 참상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기사거리」를 탐문하는 중앙일간지 기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묻혀만 있던 당시의 아픔이 조금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국민들이 5·18의 한쪽, 유감스럽게도 어둡고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도록 잘못 인도한 결과를 초래했다.

신문을 통해 본 5·18은 지금도 「학살자」 「처벌」 「제소」 「공모」 「청원」 「영령」 「진혼」 「희생」 등의 암울하고 한맺힌 어휘로 뒤덮여 있다. 신문의 모습이 이러할 때 국민들의 5·18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광주 자체에서 이런 모습을 강화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근래 들어 광주가 변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세미나와 국제 청년캠프를 열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정신」으로 승화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5·18을 이렇게 보고 있다. 일본 주오(중앙)대의 한 교수는 『광주는 아시아 민주화 운동의 원점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자유와 인권을 열망하는 아시아 지역 각 국가에 그것이 시민의 힘에 의해 민주주의를 이룩해 냈다는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했다. 독일의 홀거 하이드씨는 『5·18을 기점으로 필리핀 중국 태국 등 동남아 각국에서 민주화운동이 잇따라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동티모르의 케서린 로차씨는 당시 현장에 관한 비디오를 보면서 『오 마이 갓』하고 신음을 토했지만 광주역사에서 동티모르의 희망을 찾았다. 지금 광주에서는 19개국 10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의 압제와 민초들의 항거에 대해 토론하고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일보를 비롯한 유수의 전국지들이 지금도 5·18의 한 면만을 보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광주가 먼저 변하고 있는 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욱 그렇다.

5·18의 참담했던 기억의 파편들을 찾아내기 위해 쏟았던 언론의 노력이 지금 다시 필요하다. 이제 그 힘을 모아 5·18을 가능하게 했던 평범한 시민 공로자들, 탄식으로 밤을 새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했던 이들을 전국에서 찾아야 할 때다. 또 머리를 맞대고 5·18의 역사적 의미를 반추해 보아야 할 때다. 5·18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비극만은 아니다. 5·18을 일부 정치군인들의 술책으로만 본다면 맞는 말이다. 5·18이 단지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작전 때문이라면 정말 또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었다.

겉만을 보고 있으면 그것은 비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5·18은 우리시대의 자랑이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민초들의 바람이 찬란한 성화로 타올라 산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를 광주만의 문제로,광주만의 비극으로 축소, 평가절하하는 일은 역사의 단죄를 받을 일이다.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할 대상은 5·18이 아니라 현재 우리들의 자세이다.

한국일보는 18일자에 1개면을 「5.18특집」으로 할애, 광주의 표정, 검찰수사 및 재판점검, 기념사업, 국제연대움직임 등을 다루고 사회면에 전야제를 조명했듯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리라고 믿고 싶다.<이의정 전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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