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처럼 의료정보나 의료혜택이 골고루 미치지 못했을 때 대부분 노인들의 사망원인은 노환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령에 병이 나도 병원진찰 한 번쯤 안 받아 보고 죽는 노인이 거의 없을 만큼 병원 문턱이 낮아지고 부터는 어떤 죽음에도 반드시 핑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중 두드러지는 게 아마 암의 증가일 것이다. 예전에도 암은 있었을 터이나, 각종 공해의 탓도 있겠지만 의료혜택과 기술의 발달은 노년 뿐 아니라 중년 이후의 사망원인은 거의가 다 암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병은 현저하게 증가한 현대병이 되었다. 죽기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 투병과정의 고통스러움 때문에 암은 안 걸리고 죽었으면 하는 게 노인들의 소망이었다. 옛날 노인들은 자식들의 간병도 못 받아보고 죽는 걸 급살을 맞는다고 해서 가장 싫어했었는데 요새 노인들은 오히려 그런 죽음을 부러워하고 소망하게 되었다.○「노망」과의 차이
암이 급사의 공포를 물리친 것처럼, 암의 공포를 물리칠 만큼 노인들에게 뿐 아니라 중년 이후의 연령층을 공포스럽게 하는 최신의 병은 아마 치매일 것이다. 치매라는 말이 있기 전에도 「노망」 또는 「망령」이라는 말은 있어 왔다. 인간이 반드시 거치게 돼 있는 영아기, 유아기, 사춘기, 청장년기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앞두고 심신이 쇠약해진 시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징후를 망령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과정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친숙해진 망령이란 말을 놔두고 치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노쇠현상과는 명백하게 다른 병인이 밝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치매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암만해도 치매라는 말과 상관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흔하던 망령노인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치매환자 천지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뉘 집 노인이 망령기가 있으신가봐」라고 전해질 때, 「그저 그런가」보다 심상히 들어넘기게 된다. 그러나 「뉘 집 노인이 치매라더라」 하면 「어머머, 저를 어쩌나」 싶으면서 그 집 며느리나 딸은 물론 온집안 식구들을 동정하게 된다. 그 말은 또한 노인을 모신 가정들이 그 노인을 소외시키고 자신들의 노고를 과장하거나 노인을 구박하고 불친절하게 구는 걸 너무도 당당하게 합리화시켜 줄 수 있는 말이 되기도 한다. 『글쎄 우리 어머니가 치매시지 뭐니?』 이렇게 한 번 풍기고 나면 그 노인을 뒷방으로 내몰고 웃사람으로서의 권위나 품위를 차단시켜버려도 아무도 뭐라지 않는다. 그럴 때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의식을 했건 안했건 간에 치매라는 병은 말이 만들어낸 병이라는 혐의를 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아도 수년동안이나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다가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모셔보았는데, 그 때의 그 분의 증세가 영락없이 요새 밝혀진 노인성 치매라는 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남들이 다 망령드셨다고 했고, 우리 식구들은 「늙으면 애 된다더라」라는 말만 믿고 편안하게 견디었다. 그러나 그 때 만일 노인성 치매라는 말이 있었다면 훨씬 더 경망스럽게 수선을 떨었을 테고 온 집안식구가 불행감에 사로잡혔을 것 같다. 이렇게 돌이켜 봐서도 치매가 무섭거늘 장차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 공포심이 한결 심각해진다. 그래서 치매는 늙은이들이 암보다 더 걸리길 두려워하는 병이 되었고, 중년 연령층의 일상사까지 깊이 간여하게 되었다. 치매를 예방한다는 음식과 약에 대한 관심이나, 사소한 건망증에도 치매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일이 노인보다 중년층이 더 심한 것 같다.
○사회적 치매도
나는 물론 예방보다는 당장 자기진단이 필요한 나이지만, 진단을 유보하고자 우선 위안으로 삼는 것은, 나는 어렸을 때도 뭘 잘 잊어버렸다는 걸 상기하는 일이다. 소학교때는 도시락을 빠뜨리길 잘 했고, 아침에 비가 와서 가지고 간 우산을 저녁때 비만 개었다 하면 학교에 놓고 와서 다음에 또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맞고 학교에 가기 일쑤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운동복등 준비물을 까먹는 것은 물론 아침에 책가방 쌀 때 요일을 헷갈려 싼 적이 비일비재였다. 지금도 내가 꾸는 악몽의 대부분은 학교를 가다보니 고무신을 신고 있어서 헐레벌떡 집으로 가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다보니 책가방을 놓고 와서 다시 집으로 가는 따위 건망증의 끝없는 반복이다.
치매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나를 놓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망증이 심한 것도 나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항상 명심하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만일 내가 건망증이 심하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리게 된다면 그때 나는 비로소 치매에 걸렸다 할 것이다. 자기가 건망증이라는 것까지 까먹은 치매환자중 가장 추악한 대사회적 치매환자도 적지 않은 걸 봐와서 그런지 노망까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치매는 안 걸리고 죽고 싶다.<박완서 작가>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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