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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유해협상의 교훈(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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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유해협상의 교훈(남과 북)

입력
1996.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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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사 및 실종미군의 유해송환 문제가 일단 타결되었다. 국제정치사는 인도적 문제의 타결이 까다로운 국제문제를 풀어낸 사례를 많이 보여주고 있어 어쩌면 이것 이 한반도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미국은 미북한간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일던 93년부터 북한과의 비공식접촉을 통해 이미 162구의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넘겨받았었다. 이를 계기로 미북한은 96년 1월 하와이에서 공식유해협상을 벌였으며 이어 4일부터 뉴욕에서 후속회의를 열어 거의 한달만에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알려진 회담타결의 결과는 지금까지 미국이 인도받은 162구의 유해에 대한 공식보상금으로 1구당 약 1만2,300달러(1,000만원)에 해당하는 총200만달러를 주고, 앞으로서의 유해발굴작업을 위해 공동조사반을 구성해 현장작업을 벌이되 이에 따른 장비 및 비용은 미국이 전액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양측은 5월중 실무반을 구성하고 이르면 금년내에 북한에 흩어진 미군유해 매몰가능지역을 방문해 전문발굴을 할 예정이다.

전쟁이 난지 46년이 지났다. 그때 왕성한 젊음으로 전장에 나섰던 군인들중 살아남은 자들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떴다. 맥아더, 팽덕회, 리지웨이, 밴프리트, 정일권, 김석원같은 이름있는 장군들은 물론이고 6월이면 옛 전쟁터를 찾거나 지역별로 모이던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숫자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쟁중 묘지도, 비문도 없이 산하에 흩어져 있던 전사자들의 시체야 백골이 되다못해 진토가 다 될 지경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의 문이 빠끔히 열리자 마자 바로 그런 유해부터 찾기 시작했다. 93년 판문점을 통해 건네받기 시작한 미군유해는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많은 현금을 주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이었다. 적게는 수천달러로 부터 많게는 수만달러까지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62구의 유해를 하와이유해감정소에서 세밀히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동양인의 뼈거나 심지어 동물의 뼈다귀도 섞여 있었고 실제 미군유해로 밝혀진것은 10구가 채 안된다. 그러나 미국은 말한마디 없이 계속 북한과의 유해협상을 벌여 타결을 본 것이다. 경이로운 정부처사가 아닐 수 없다.

북한정부의 행위는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국가 명령에 따라 전쟁에 나왔다가 죽어간 젊은이들의 유해를 찾는데 도움은 주지 못할지언정 이를 비공식적으로 돈을 받은 것 외에 다시 유해값을 받는 것이 과연 한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남한도 북에 두고온 많은 국군유해와 포로들에 대한 아픔이 남아 있다. 6·25당시 미처 거두지 못한 국군전사자들의 주검이 압록강에서부터 휴전선 이북에 까지 흩어져 있었다. 또 약 5만명의 국군이 북한땅에 처져 포로가 됐었다.평양 순안비행장은 바로 이 국군포로중 2만여명이 동원돼 닦여진 비행장이다. 작업중 수많은 포로들이 그대로 죽어갔고 그 뼈는 지금도 비행장의 어느곳엔가 묻혀 있을것이다. 한국의 이승만정부는 김일성공산정권을 승인할 수 없다는 주장아래 휴전회담 서명을 강력히 거부해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주도적 전후처리도 할 수 없게 됐었다. 이제 4자회담으로 북한과의 협상이 벌어지면 늦었지만 북에 두고온 국군포로문제를 거론해야 할 것이다.<정일화 편집위원겸 통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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