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협상력은 어느 정도인가. 과거를 얼핏 더듬어 보면 세계 최강대국에 걸맞게 언제나 강한 협상력을 발휘했다는 인상은 주지 못한다.2차대전 막바지에 연합국이 전후 처리를 논의한 얄타 협상부터 시작해 중국의 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종전 협상에서 미국이 상대를 눌렀다는 평가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얄타에서는 소련에 동구를 안겨 주었고 국공내전을 매듭지을 때는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 내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정전 협상도 점수를 얻지 못하기는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협상력을 이런 측면으로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있다. 미국의 대외 협상은 물론 국익을 바탕에 깐 것이기는 하지만 「세계 경영전략」이라는 큰 틀안에서 이뤄진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 하면 얄타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회한 스탈린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해 동구를 내줬다는 식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소련이 참전해 입은 인적·물적 피해, 미국이 그래서 상대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피해를 감안해 볼 때 그같은 전후 처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요는 미시적으로 보면 협상에서 마냥 물러서기만 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도 진 것같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원래 세웠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미국의 협상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두 측면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느냐이다. 「세계의 경찰」 미국이 나선 협상에는 그 상대국뿐 아니라 이른바 관련당사국이 있기 마련이므로 이 문제는 중요하다.
북한 핵문제 협상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미국이 지리한 협상끝에 이룬 「북한 핵동결」은 클린턴 대통령의 중요한 치적으로 꼽힌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협상이었지만 미국은 북한을 세계적 핵확산금지 틀속에 묶어 두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이를 어떻든 달성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평가는 협상과정에서도 그렇고 협상 타결후에도 미국과는 좀 달랐다는 기억이다.
그러면 한미 양국이 북한에 제안한 4자 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 핵문제처럼 전개되지는 않을까. 북한은 아직 「검토중」이란 말만 하고 있다. 그사이 미국과 미사일회담을 가졌고 유해송환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만큼 시간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유해송환 보상을 해주기로 한 것처럼 북한의 미사일 수출도 외화벌이 수단이므로 이를 막으려면 역시 보상을 해줘야 할 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을 외부세계로 끌어낸다는 것이 미국의 「원대하고도 거시적인」 협상목표일 터이다. 북한이 얻어낼 만큼 다 얻어낸 뒤 언젠가 4자 회담을 수용하거나 비슷하게 받아 넘겨도 미국의 목표는 달성되는 셈이다.
궁금한 것은 우리정부도 미국처럼 생각하고 있느냐이다. 당장 미국이 북한에 쌀을 주자고 하면 우리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북한이 남북대화를 계속 외면하면서 미국만을 상대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북한이 개방된 세계로 나오면 좋은 것이라고 우리 정부가 생각한다면 별문제이다.
그렇지 않고 속만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4자회담을 제안하면서 북미관계와 남북문제는 연계시키지 않기로 했으니 미국의 급속한 대북 관계개선에 대해 핵문제때처럼 따질 수도 없는 처지이다. 세계를 경영하는 미국과 우리의 협상 목표가 일치하면 다행이지만 국제관계에서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우리 정부가 4자회담 추진전략을 재점검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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