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드러내기」 명훈련사/“글 쓰기는 무장해제 행위” 화두 통해/20년간 굵직굵직한 극작가들 배출교탁위에 놓인 두 권의 책과 먹다 남은 사발면, 그리고 그 옆에 쌓인 두툼한 원고지 뭉치. 서강대 이근삼(66)명예교수의 「창작법」강의는 이 정물들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매 학기를 시작한다. 교재도 없고 시험도 없다.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20여년 지속돼 온 이 강의의 전부다.
이교수는 「국물 있사옵니다」 「제18공화국」 등 굵직굵직한 여러 희곡들을 발표한 극작가이자 현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70년 개설된 「창작법」강의는 이교수의 정년퇴임과 함께 94년 잠시 폐강됐다 학생들의 열화 같은 요청으로 이번 학기 다시 개설됐다.
이 강의에 얽힌 사연은 참 많다. 80년대 중반 「어머니」를 소재로 글을 쓰고 발표하다 서로의 고민을 공감, 의형제를 맺은 학생들도 있고 이 강의를 듣다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된 사람도 있다. 모 방송사의 인기드라마였던 「폭풍의 계절」의 최성실씨(39)가 대표적. 드라마 「아들과 딸」, 「까레이스키」 등을 연출한 장수봉PD(49)도 열렬한 수강생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온다.
명성탓에 이번 학기초 수강신청때는 200여명이라는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선착순, 3·4학년생, 신방과 학생 순으로 엄선해 현재는 30명의 학생이 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과제물 낭독, 공동창작, 르포, 인터뷰 등 다양한 수업과정을 거친후 학기말에 원고지 60매 분량의 자신의 작품을 제출, 한 학기를 평가받게 된다.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을 무장해제하는 행위」라고 강조하는 이교수는 수업시간에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관여를 않는다. 『교수의 역할은 학생들의 창작을 돕는 간단한 설명을 하고, 글 쓰는 과정을 지켜보고, 작품 토론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때 이 강의를 듣고 그 후 이교수의 조교로 활동했던 김종석씨(30·런던대대학원 유학중)는 『강의 첫시간에 칠판에 창작이론에 관한 서적들을 가득 적었다 다시 지우고는 「이런 책들을 잊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그대로 숨김없이 보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당시를 회고했다.<김관명 기자>김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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