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한배 2년 현실벽에 좌초/전혀다른 두삶 “인종차별철폐” 목표 손잡아/거수기전락 백인정당 급격위축 결국 “파경”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당 국민당(NP)이 9일 넬슨 만델라대통령의 거국내각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를 종식시키기 위한 2년간의 「흑백동주」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로써 데 클레르크와 만델라사이의 흑백간 정치적 우정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됐다.
데 클레르크와 만델라의 우정은 「백인대통령」과 「흑인장기수」로 신분이 극과 극이었던 90년부터 시작됐다. 이 해 2월 대통령 데 클레르크는 27년간 외딴섬에서 옥살이를 해오던 흑인정치범 만델라를 석방했다. 이후 둘의 정치적 우정은 대통령과 야당지도자, 백인부통령과 흑인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어지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인종과 성장배경, 인생역정이 확연히 다르면서도 인종차별 철폐라는 하나의 공동목표를 위해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는 한배를 탔던 것이다. 이들의 우정은 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데 클레르크의 연정탈퇴선언은 소수당으로 전락한 국민당의 정권참여를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규정한 신헌법 제정이 계기가 됐다. 또 연정이후 국민당각료들이 백인에게 불리한 정책에 대해서도 거수기 역할만 하는등 국민당의 힘이 약화하자 당내 강경파들이 차라리 야당이 되어 정당하게 목소리를 높이자는 주장을 편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델라도 데 클레르크의 이러한 고뇌를 잘 이해하고있다. 만델라는 백인정당으로서 시대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국민당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데 클레르크의 그동안 기여에 감사를 표했다.
데 클레르크는 보수파의 본거지인 트랜스발의 캘빈파집안 출신으로 증조부가 국민당의원, 부친은 장관, 삼촌은 총리를 지낸 국민당의 명망높은 가문출신이다. 이는 역으로 그의 조상들이 흑인탄압에 앞장섰다는 얘기다.
89년 국민당 당수로 선출된 데 클레르크는 그해 8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인종격리정책 철폐를 외친 뒤 6개월만인 90년 2월 흑인반체제단체들을 합법화하는 한편 만델라를 석방했다. 그의 조상들의 빚을 만델라에게 갚는 셈이었다. 그는 이어 흑인들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만델라의 실체를 인정하고 300여년간 지속된 흑백차별정책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남아공의 흑백차별정책종식과 민주화를 위한 데 클레르크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향후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만델라 정권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백인정당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얻었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정치라면 남아공에서 국민당은 영원히 정권을 획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 대통령 만델라가 야당지도자의 길을 걷게될 데 클레르크를 도와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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