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 한국측이 제기한 4자회담안에 대한 이해와 협력요청을 거부한 것은 한국과 러시아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한국과 미국의 주도에 의한 한반도문제 해결방식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서 앞으로 4자회담추진과 동북아의 평화·안정구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하겠다.물론 이번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러시아가 한반도 4자회담안을 전폭 지지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작부터 남북한과 미·일·중·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6자회담 내지 유엔까지 포함한 7자회담안을 주장해 온 바 있었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데 자신들이 제외된 4자회담안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힌바 있지만 외상회담에서는 그동안 쌓였던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프리마코프장관이 「4자회담을 제기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며 방해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것은 강한 반대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 틀림없다.
러시아의 불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소련공산체제의 붕괴와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로 현재 대북한관계는 크게 벌어지고 냉각되었지만 한반도문제에는 당연히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온 것이다. 그러다가 북·미간의 핵해결과 한·미·일에 의한 경수로지원 등에 이어 4자회담으로 또다시 소외된데 반발한 것이다. 공로명장관이 4자회담에 의한 평화체제구축후 장차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에 의한 다자안보대화의 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거부한 것이다.
아무튼 4자회담안에 대해 러시아측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외무부가 러시아로부터 한국측 제의를 이해하고 방해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받아낸 것을 성과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또 4자회담 거부를 러시아정부가 대통령선거에서의 득표를 의식, 강대국의 위상을 애써 과시한 때문이라는 풀이도 설득력이 약하다. 김영삼대통령의 친서전달도 그렇다. 옐친이 지방유세관계로 직접전달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총리등을 방문, 전달토록 했어야 했다.
이제 정부는 그동안 소홀했던 대러시아외교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허점투성이인 양국관계를 보다 긴밀히 하는 게 시급하다. 인적 물적 교류도 당연히 촉진해야 한다. 구공산당은 물론 러시아정부내에서도 대북한관계의 복원당위논이 점차 높아 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미정상회담에서의 4자회담발표 직후 적어도 외무차관급을 보내 러시아측에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문제가 터져야 나서는 자세는 옳지 않다. 지정학적인 한반도의 입지관계로 우리는 싫든 좋든 주변강대국과 관계를 연중내내 다지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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