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느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 살려 달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아파트의 창문을 살짝 열고 내려다 볼 뿐 아무도 달려 내려와 도와주기는커녕 신고조차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범인이 도주하는 모습을 보자 아예 재빨리 창문 커튼을 내려버리고 못본 체 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어 상당히 충격을 던져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험악한 미국의 대도시에서나 어쩌다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던 비슷한 일이 이곳 내 나라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좀처럼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친구가 운영하는 해장국집 일을 도와주고 밤늦게 귀가하던 30대 가정주부가 괴한에게 폭행을 당해 숨진 사건이 며칠전에 있었다. 슈퍼마켓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주택가에서 살려 달라고 40분동안이나 비명을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폭행장면을 문틈으로 지켜볼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결국은 턱뼈가 부러진 채 목이 졸려 숨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이 최근 몇년 사이에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것 같다. 새벽시장에 나가던 여인이 택시에 치였으나 지나가던 행인들도, 택시운전사도 교통사고를 당한 여인의 가방에서 쏟아진 돈 줍기에만 혈안이 되었기 때문에 이 여인을 친 택시는 그 사이에 뺑소니를 쳐버렸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 여인은 결국 숨진 채로 발견되고 말았던 일이 생각난다.
○최대죄는 무관심
며칠전 신문에는 또 이런 사건이 실렸었다. 30여명이나 되는 승객이 버스에 같이 타고 있었으나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대생이 소리를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20여분동안 누구도 알은 체 하지 않고 외면해 버렸다고 한다.
하기는 험악한 세상이니 공연히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거꾸로 피해를 보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눈코 뜰사이 없이 바쁘고 피곤한데 알은 체하고 섣불리 신고했다가는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할 것이고, 그러면 생기는 것 없이 귀찮기만 할 것이니 아예 모르는 체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험금 타 먹자고 애꿎은 사람 살인도 하고, 손자가 돈 때문에 부모 대신 돌봐 준 할머니도 폭행하고 강도질도 하는 세상에 피해가 올까 두려워서 또는 바쁜 세상에 말려들기 싫어서 못본 체 한 것이 무슨 그리 큰 죄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행여나 이 질문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음과 같은 누군가의 고백을 정직하게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양심은 내 안에 있는 모서리가 세 개 달린 작은 물건으로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는 그것이 돌기 때문에 마음을 대단히 아프게 한다. 그러나 계속 잘못을 저지르면 너무 많이 돌아 모서리가 닳아져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는다』
일찍이 버나드 쇼는 인류에 대한 최대의 죄는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무관심이야말로 비인간성의 정수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혹자는 또 무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우리의 미래에 가장 두려운 일이 폭탄이나 유도미사일 때문에 생기리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의 문명이 그런 식으로 끝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더 이상 아무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에 멸망은 찾아올 것이다』
○남이야 어찌되든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서로 관계를 맺어 가며 더불어 살게 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서 어느 한 부분이 무관심 때문에 피가 돌지 않게 되면 그 부위만 병들고 썩어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다른 부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상태가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지면 그 때는 그 사회 전체가 벌레 먹은 고목이 맥없이 쓰러지듯 넘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 구태여 나서서 어려움을 자청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뼈아픈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마틴 니멜로라는 사람이 세계 제2차대전중 겪은 자신의 경험을 노래 한 것으로 무관심이라는 중한 병에 걸린 우리에게 주는 경고문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항변하지 않았습니다/독일에서 나치들이 유대인을 잡기 위해 왔을때/나는 항변하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그 다음에 상업조합원들을 체포하러 왔을 때도/나는 항변하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나는 상업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그 다음에 천주교인들을 체포하러 왔으나/나는 항변하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나는 개신교인이었기 때문입니다/그 다음에 결국 나를 잡으러 그들이 왔을 때는/나를 위해 항변해 줄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왜냐하면 모두 다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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