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호용씨 사실상 현장 지휘/5·18 새로 밝혀진 사실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호용씨 사실상 현장 지휘/5·18 새로 밝혀진 사실들

입력
1996.05.07 00:00
0 0

◎미 “항모배치때까지 광주재진입 유보” 요청/전교사령관에 독려친필… 전씨는 완강부인12·12 및 5·18사건 7차공판에서는 신군부측이 80년 5월23일 새벽에 광주재진입작전을 개시하려다 미군의 반대로 27일로 연기한 사실등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광주재진입작전 택일=80년 5월22일 김준봉2군작전처장이 이희성계엄사령관을 찾아와 23일 새벽2시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계엄사령관은 24일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한뒤 다음날 상오 참모들과 회의를 갖고 25일 2시이후에 작전키로 내부방침을 세웠다.

이후 이계엄사령관은 국방장관실에서 유병현합참의장으로부터 『항공모함과 조기경보기가 한국에 배치될 때까지 작전을 유보해 달라』는 미군측의 요청을 전달받고 전두환보안사령관등과 협의, 27일 새벽1시에 전교사령관의 판단하에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론내렸다.

▲황영시육참차장 강경진압지시=검찰은 황육참차장이 5월21일 이구호기갑학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차 1개대대(32대)를 동원해 시위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지시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또 김기석전교사부사령관에게도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할 것을 지시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며 김씨가 보관하고 있던 전화메모지를 공개했다. 이 메모지에는 「APC(경장갑차)―코브라(전투용헬기), 차량 5백MD로, 인원―병력」이라고 적혀 있으나 황씨는 법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전면부인했다.

▲정호용특전사령관 광주현장지휘=정호용특전사령관은 계엄군의 광주시위진압작전 당시 모두 4차례에 걸쳐 광주현장에 내려가 8일동안 머물렀다. 정씨는 이날 『당시 전교사령부 2층 전용방에 있으면서 공수여단장등 예하지휘관과 부대참모들로부터 수시로 상황보고를 받았다』고 진술, 사실상 현장지휘했음을 시인했다.

한편 검찰은 정특전사령관이 80년 5월24일 광주교도소에서 최세창3공수여단장과 박종규 3공수15대대장에게 진압격려금 1천5백만원을 준 사실을 최씨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으나 정씨는 이를 부인했다.

▲최규하대통령 광주방문경위=전보안사령관은 광주재진입작전 계획이 확정된 25일 주영복국방장관 이희성육참총장등과 청와대에서 최대통령에게 계획을 보고하면서 광주방문을 건의했다. 최대통령은 광주에서 진압작전을 실시할 경우 상당수의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도청으로 가려다 주위의 만류로 특별담화만을 녹음한 뒤 서울로 올라왔다. 전씨는 법정에서 최대통령에게 진압작전을 보고한 사실을 부인했으나 주씨등은 보고당시 전씨도 동석했다고 진술했다.

▲전두환보안사령관 친필메모 =검찰은 전보안사령관이 5월23일 정특전사령관을 통해 소준렬전교사사령관에게 광주시위진압을 독려하는 친필메모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 메모지에는 「소선배귀하, 공수부대를 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 희생이 따르더라도 광주사태를 조기수습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사인과 함께 적혀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으나 전씨는 『청문회때도 듣지 못한 이야긴데 구속되고나니 이상한 모함까지 생긴다』며 이를 완강히 부인했고 정씨도 전달사실을 부정했다.<박정철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