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회의 조항도 “있으나 마나”/“잦은 파행” 졸속·날림 처리 일쑤14대 국회에서는 모두 1백67회의 본회의와 1천3백26회의 상임위가 열렸다. 그러나 이 기간에 법안을 심사한 일수는 각각 39일과 3백80일로 그 비율이 전체 개회일수의 23·4%, 28·7%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간의 상당부분은 여야의 대치로 인한 공전과 파행으로 얼룩졌다. 국회 본연의 임무인 법안심사와 처리가 졸속과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특히 여소야대로 출발, 내년 12월 15대 대선을 치르게 되는 15대 국회의 경우 여야간 경쟁과 대결이 한층 첨예화해 법안심사가 더욱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정기국회 임시국회의 구분없이 아예 1년을 회기로 정해 국회를 연중 운영하고 있고 독일은 아예 원구성후 의원의 임기만료때까지를 단일회기로 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적이고 심도있는 법안심의가 진행된다. 우리나라에도 이같은 상시국회를 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연초에 각당 대표와 협의, 국회의 연중 기본일정을 짜게 돼있다. 하지만 정치쟁점에 따라 국회일정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이런 조항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또 국회 폐회기간에 상임위별로 월2회의 전체회의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지난해와 올해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의원과 국회전문가들은 상시국회를 통한 밀도있는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을 두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는 대다수 법안이 정기국회에 집중적으로 제출, 심의되고 있는 관행이다. 14대 국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전체 법률안 5백81건중 81%인 4백71건, 의원입법 3백21건중 68%인 2백19건이 정기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정기국회는 일단 국정감사로 초반 30여일을 넘기는데다 중반이후에는 새해 예산안과 추곡수매가등 쟁점현안을 둘러싼 여야대립으로 공전하기 일쑤다. 결국 나머지 일반법안은 막판 벼랑끝 타협에 따라 정치성 법안에 덤으로 얹혀 날림처리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속에 폐회중 열리도록 돼있는 상임위는 그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신경식문체위원장은 『월례회의를 소집하려다 마땅한 심의현안이 없어 취소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국회운영위의 안병옥입법심의관은 『법안의 상시제출 관행의 정착이 내실있는 심의를 위한 1차적 과제』라고 지적한다.
두번째 당선을 위해서는 지역구관리에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선거현실이다. 한국의회정치연구회장인 윤영오여의도연구소장은 『지역구의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차기선거에서의 당선이 위태로워지는 풍토에서 1년내내 국회에만 전념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소장은 『때문에 이 문제는 국회차원의 각성 및 제도개선과 함께 선거문화와 유권자의식의 개혁이 동반돼야만 해결될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우리 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요체인 토론문화에 미숙하다. 상대방의 의견존중, 인내, 대화, 타협의 개념은 흑백논리, 수를 이용한 밀어붙이기, 극한 저지 등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원 개인의 질적 향상 노력과 함께 정상적 대화를 가능케 하는 여야관계의 재정립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지도부의 지시를 맹종하고 의사당에서 「활극」을 벌이는 의원에 대해 단호한 심판을 내릴 수 있는 국민의식의 선진화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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