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집중·문어발 확장 외형적 제동엔 “한계”/「재벌이 곧 총수」인 소유·지배구조 겨냥 주목정부의 재벌관이 바뀌었다. 재벌문제에 대한 해법도 달라졌다.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과 대기업총수의 무더기 검찰소환을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끊기」를 선언했던 정부는 이제 한국경제만의 독특한 양태로 꼽히는 재벌구조의 혁신적 「새틀짜기」를 모색하고 있다. 「탈규제」「유리알경영」을 지향하며 숨가쁠 만큼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는 신재벌정책의 배경과 내용, 전망을 분석해본다.<편집자 주>편집자>
우리나라 재벌은 영문으로도 「재벌(Chaebol)」로 표기된다. 이는 국내재벌의 국제적 지명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일반적 기업집단(Conglomerate 또는 Business Group)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구조적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재벌만이 갖는 특수성이란 두말할 나위없이 ▲계열사를 단일집단으로 묶는 난마같은 출자·채무보증관계와 ▲이를 통해 대주주 개인이 그룹전체를 지배하는 「총수체제」이다.
그동안 정부의 재벌정책은 기본적으로 「외형규제」였다. 80년대이후 경제력집중과 문어발확장으로 경제적 폐해와 정서적 거부감이 확산되자 정부는 재벌의 몸집이 더이상 커지지 못하도록 여신규제 부동산취득제한등 수많은 제도적 규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경제력집중과 문어발식 확장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30대그룹 계열사수만 봐도 91년 561개에서 93년 604개, 올해엔 669개로 늘어났다. 특히 재벌외형의 규제로 정부는 『경제전쟁의 첨병인 대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만 잡는다』는 비판까지 받게 됐다. 단순한 「다이어트」요법으론 재벌문제는 해소될 수 없다는 반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신재벌정책은 한마디로 「규제는 풀되 경영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로 집약된다. 구재벌정책이 외형팽창에 대한 규제라면 신재벌정책은 대주주 독단경영을 가능케 하는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규제이다.
신재벌정책에 관여한 정부당국자는 『경제력집중과 문어발식 다각화가 문제되는 것은 「재벌=총수개인」이란 등식때문』이라며 『계열사마다 주주의 입장이 반영돼 그룹경영이 총수전횡에 좌우되지 않는다면 합법적 기업활동에 의한 외형확장이 금기시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대기업의 집중도가 심한 선진국도 많지만 이들은 출자 채무보증관계로 얽혀있지도 않고 대주주에 의한 경영독주도 불가능해 경제력집중이나 영역확장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장기업 대주주 1인의 평균지분율은 15%, 30대그룹도 총수·가족지분율은 10%(계열사출자 포함시 43%)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그룹전체에 100%이상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부실계열사에 대한 채무보증, 가지급금을 통한 비자금조성, 주총절차를 밟지도 않는 임원임면등 수많은 소액주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 아무런 제동장치없이 총수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신재벌정책을 통해 재벌경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인다는 방침아래 ▲공시제도강화 ▲회계제도개편 ▲이사 및 감사기능회복 ▲소액주주권한신장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기존 공정거래법을 강화해 계열사들을 한묶음으로 총수의 1인지배를 가능케 하는 계열사간 채무보증은 5년내 완전금지할 계획이다.
경제력집중과 문어발확장의 현상개선 자체에 초점을 둔 기존 정책과는 달리 신재벌정책은 이것이 경제적 정서적 문제점으로 부각되는 원인의 규제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재벌정책은 그동안 성역시되어온 「총수체제」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사건이후 정경유착 타파를 공식선언한 현 정부인 만큼 집권후반기의 「재벌길들이기」를 위한 엄포용은 아닌게 확실하다.
거세게 밀려오는 신재벌정책의 풍랑에 재계가 어떻게 대응하고 정부는 또 거센 저항을 어떻게 뚫고나갈지 주목된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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