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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회교도 반목의 골메우기“과제”(싹트는 평화의현장:1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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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회교도 반목의 골메우기“과제”(싹트는 평화의현장:13·끝)

입력
199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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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민주정부 수립 정지작업 불구/전범포함 과거 청산 등 곳곳 걸림돌/새 정부 불협화 힘의 공백땐 내전 불씨 되살아날 소지피묻은 전사들이 평화의 역군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

보스니아는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내전 종식과 적대 세력들간의 평화 공존, 나아가 단일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군사작전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사라예보의 목을 죄었던 세르비아계가 별다른 저항없이 데이턴 평화협정에 따라 포위망을 풀고 철수, 4년만에 외곽지역까지 시민들의 자유 왕래가 가능해졌다. 또 보스니아의 전전선에서 포성이 멎었으며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연방과 세르비아계 관할 지역을 구분하는 국경지역도 평화를 되찾았다.

국제사회는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전쟁 책임을 묻는 전범 재판등 과거청산 작업에 돌입하는 한편 단일 합법정부 구성을 위한 정지작업을 활발히 펴고 있다. 유엔의 금수조치로 내전기간에 본의 아니게 경제적 피해를 본 발칸반도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등 주변국가들도 보스니아내전이 끝난데 따른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긴장을 풀고 있다.

하지만 사라예보, 나아가 보스니아전역이 전쟁중 보인 분열상을 극복하고 사회적 안정을 갖춘 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우선 나토군이 마지막 순간까지 회교도이든 세르비아계든 무기를 놓게 만들 수 있을는지가 의문시된다. 평화협정에 따라 회교정부에 관할권을 이양하고 세르비아계 주민과 함께 일리차를 떠나야 했던 네디엘리코 프르스타이에비츠 시장은 『세르비아계에 있어 민간인과 군인은 차이가 없다. 일시 군복을 벗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군인이다』라고 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그의 말은 세르비아계 전체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95년8월 어쩔 수 없이 점령지인 크라이나 지역을 떠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인들이 무기를 놓기는 커녕 인근의 슬레브니차에서 수천명의 회교도들을 억류, 그중 일부를 보복 처형한 바 있다. 세르비아계는 비록 나토군의 진주로 점령지역을 회교도측에 내놓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분쟁거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세르비아계가 국제사회의 안전보장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라예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데이턴 평화협정이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것임을 예고한다. 보스니아의 평화는 또 과거청산과정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재 세르비아계에서 라도반 카라지치 지도자와 라트코 믈라디치 총사령관등 45명, 크로아티아측에서 7명등 모두 60여명이 전범혐의로 구유고 전범재판소에 기소돼 있지만 아직 검거및 재판실적은 미미하다. 더욱이 세르비아계는 전범재판이 자신들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발하는 실정이다. 세르비아계 고위장교 2명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전범재판소로 실려가던 2월15일 사라예보 시내를 지나던 버스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승객들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사라예보에 다시 저격병이 나타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랜 내전동안 숱한 전쟁범죄가 있었으나 이를 해결할 묘안이 없다는 사실은 또다른 분쟁거리를 만들어 낼 소지가 많다.

세르비아계뿐만이 화근은 아니다. 반세르비아 정서는 보스니아 회교―크로아티아 연방을 결속시킨 구심점이다. 따라서 세르비아계의 힘이 약해져 공동의 적이 사라질 경우 크로아티아계마저 회교도에 등을 돌리고 「대크로아티아 건설」의 야망을 불태울 가능성이 있다. 이미 모스타르 등 일부지역에서는 회교도와 크로아티아계간의 세력다툼 양상도 빚어지고 있다.

데이턴 평화협정에 규정된 제도적 장치들도 항구적 평화를 보장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보스니아 단일정부의 대통령은 순번제로 운영되고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공화국간부회는 내전 이전처럼 회교도와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가 각 2명씩 그리고 소수민족대표 1명으로 구성되게 된다. 하지만 의회는 인구 구성비상 제1당은 회교도의 이슬람민주행동당, 제2당은 세르비아민주당, 제3당은 크로아티아 민주협력당 순으로 이뤄질게 틀림없다. 따라서 중앙정부내 불협화음으로 힘의 공백이 초래된 상황에서 누군가가 「대세르비아」나 「대 크로아티아」 또는 「회교공영권」 건설의 야욕을 불태운다면 다시 내전의 불길이 댕겨질 개연성은 크다. 또 그동안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던 군대를 누가 지휘할 것인가. 보스니아는 앞으로 하나로 통합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영원한 남남으로 남을 전망이다.<비하치=이진희 특파원>

◎내전 최대 격전지 비하치/세르비아·크로아·회교 문화권 공존/“향후의 연방 장래 가늠자 역할”전망

내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보스니아 북부 비하치는 회교 보스니아 연방의 장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실험장이다.

비하치가 위치한 우나 사나 칸톤지역은 내전전만 하더라도 20만 주민중 회교도가 67% 세르비아계 17.7% 크로아티아와 헝가리계가 각각 7%씩 점한 가운데 키릴문자와 라틴어, 정교회와 회교사원이 혼재해 있었다. 즉 슬라브계인 세르비아와 신교인 크로아티아, 회교 등 3개 문화권이 공존해 있던 곳이다.

그러나 내전은 이같이 오랜 안정구조판을 일시에 흔들어 놓았다. 우선 인접한 크로아티아의 주민들이 95년 5월 세르비아계의 대공세에 밀려 대거 이주해 왔다. 반면 세르비아계는 대부분 빠져 나갔지만 동쪽으로 최대 근거지인 반야루카를 중심으로 남쪽의 보스 패트로바치 지역과 크로아티아 국경지역인 북서쪽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비하치를 함락 직전까지 몰고 갔던 세르비아계와 공방전을 펼쳤던 회교와 크로아티아 연합군 양측 모두 무차별 학살을 자행해 어느 지역보다도 서로에 대한 반감이 크다. 한 연방구성원이 된 회교도와 크로아티아 주민이 한데 어울려 전쟁복구 작업이 한창인 비하치시내의 건물벽에는 아직도 실종자와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벽보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이때문에 내전이 재발된다면 그 첫 총성은 비하치에서 울릴 것으로 평화협상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우나 사나 칸톤의회의 아텐 보리치 의장은 의회가 새로운 민족구성에 맞춰 자치규정도 다시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규정이 어느 한 민족에라도 피해의식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작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크로아티아 유엔평화유지군 민병석 전 단장/“정치지도자 「과거들추기」 고난 씨앗/적대 세력 강제 동거식 수습 화해 시급”

『90년대까지 문제가 없었던 민족및 종교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쓸데없이 과거를 들춰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무엇보다도 총부리를 서로의 가슴에 겨눴던 적대세력간의 화합이 중요하다』

구유고지역의 평화 구축에 힘써온 민병석 전 크로아티아담당 유엔평화유지군(UNCRO)단장(53·사진)은 데이턴 평화협정으로 총성이 멎은 보스니아의 장래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고 밝혔다.

95년7월부터 올해 1월15일까지 UNCRO단장을 맡아 자그레브 유엔본부에 상주하며 내전당사자간의 휴전 감시와 신뢰구축 활동, 구호활동을 총괄했던 그는 『데이턴협정은 같이 살기 싫은 부부를 한방에 몰아넣는 「강제동거형」』이라고 말했다. 지난 400여년동안 「지배―억압」관계를 바꿔가며 문화적 충돌을 빚어온 민족간에 벌어진 유혈 분규에 대한 앙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체코주재 대사를 지냈던 그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이른바 「벨벳 이혼」으로 불리며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합리적인 분가를 이뤘다면 보스니아는 회교도와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에 동거생활을 강요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로인해 『냉전 종식이후 유럽 대륙의 집단 안보체제에 대한 첫 실험장으로 등장했던 보스니아를 비롯한 구유고지역이 계속해서 평화의 실험대로 남을 것』이라고 민 전단장은 전망했다.

그는 또 보스니아에서 유엔군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과 관련, 『유엔이 가장 위험할때 들어가 많은 분야에서 기반을 닦아놓았기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개입이 가능했고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보스니아의 현재는 유엔군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반박했다.

한국인으로서 유엔정무직가운데 가장 고위(사무차장보급)직을 역임한 민 전단장은 끝으로 『보스니아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남북통일 역시 과거를 들춰내서는 불가능하며 남북한간의 화해와 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 이스라엘 북아일랜드 등 세계 3대 분쟁지역에 파견된 특파원들의 생생한 현장 보고로 꾸며졌던 신년기획특집 「평화가 싹트는 현장」시리즈를 이번 보스니아편을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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