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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단편집 「알마덴」(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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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단편집 「알마덴」(요즘 읽은 책)

입력
199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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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열정 풀어쓴 몽환적 필체 감동/늘 막연한 기대로 설레는 삶에도 매료별로 책읽는 것이 취미가 아닌 사람에게도 일생에 한 번쯤은 가슴에 와 닿는 구절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탈무드라든가 유명인의 수필집이라거나 아니면 어린 왕자나 좀머씨이야기 같은 것. 처음에 나는 김지원의 단편 하나를 읽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서점을 뒤져서 김지원의 소설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소설을 쓴다거나 하는 일에 전혀 흥미가 없을 때였고 읽는 것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김지원의 단편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나는 빨려들어갔다.

김지원의 소설에는 꿈결을 걷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몽롱한 자의식과 잔잔한 일상의 비극,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 열정, 한참이나 지나간 다음에 짚어보게 되는 인생. 나는 그때 막 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생의 현실에 대해서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리라, 언제나 아침은 밝고 그늘이 없으리라. 김지원의 소설의 여자주인공들도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먼 곳에 있고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보이게 되고 그리고 행복한 듯 보이는 인생에도 나른한 봄바람같은 쓸쓸함이 안개처럼 퍼진다. 이것은 김지원의 문체가 갖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미치게 좋았다. 「베갯머리꿈」에서 주인공여자는 한 번 만난 어느 남자를 잊지 못하고 언제나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며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그 남자와 만날만한 공원을 산책한다. 그러다가 정말로 우연히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여자주인공은 그다지 열정에 빠지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고 사랑에 환멸도 느낀다. 서른살이 한참이나 지나서 단조로운 직장일과 세상일에 지쳐 있는 주인공에게 그 사랑의 남자는 다시 한 번 더 나타난다. 남편이 컴퓨터게임을 하러 간 사이에 공원에서 그 남자를 만난 여자주인공은 그 남자가 자기에게 오기를 꿈속에서처럼 열렬히 원하고 또 원한다.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열정, 그 미성숙함, 「나는 그를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그는 없어졌다」. 그렇게 그 남자는 사라진다. 여름밤의 축제, 인파로 가득한 공원, 사라진 남자, 환상적인 사랑, 초라한 현실. 그래도 언제나 막연한 기대에 설레는 인생.

김지원의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이 미국이민생활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낯설었지만, 결국 배경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다. 이국적인 요소가 이 글들에 주매력으로 어필하고 있지도 않고 미국이라는 공간에서만이 일어날 수 있는 특수사건을 다룬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소설이라는 장르로 구분짓고 거부반응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본다.<배수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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