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자율조정」 성공할까/최근 철강·석유화학 등 서로 증설 발표/“이해대립 첨예” 협상력 발휘 여부 관심정부가 철강 석유화학등 대규모 장치산업의 설비투자를 「규제」가 아닌 「민간자율조정」에 맡기기로 한 이후 성공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껏 정부간섭에 길들여져온데다 업계의 이해가 엇갈려 조정작업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시험대에 오른 것이 석유화학업계의 나프타분해공장(NCC)증설건. 올부터 유화분야 투자가 전면자유화해 업계 스스로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담당할 「민간자율투자조정협의회」(민자협)가 구성되기도 전에 업체들이 잇따라 NCC증설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석유화학이 18일 3,200억원을 들여 충남 대산에 제2 NCC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하자 유공도 25일 울산단지에 50만톤규모의 추가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LG석유화학 한화종합화학도 공식발표는 아니지만 증설계획을 내놓고 있고, 다른 업체들도 가세할 움직임이다. NCC는 합성수지를 비롯해 모든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가 되는 에틸렌을 생산하기 위한 설비·기초원료가 부족해 관련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자는 게 업계의 신·증설 이유다.
현재 업계는 각사가 증설할 경우 2000년에는 생산량이 수요량의 두배정도 많아 공급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민자협 발족을 적극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담당임원이나 사장단회의를 갖고 있는데 결의사항의 구속성여부나 위반사에 대한 제재방법등에 이견이 있어 회칙안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율조정 대상범위를 NCC에 국한하고 내달까지는 민자협을 구성한다는데는 합의했다.
통상산업부는 업계의 결의사항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고, 업계 역시 정부의 개입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소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여서 대타협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완공시기를 조절하거나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NCC를 건립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해당 업체들이 그룹차원의 정책결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독자적인 협상력을 갖고 있지 못하는데다 설사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게다가 2년전 발족한 철강설비투자협의회의 경우 사실상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올초 현대가 제철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했을때 협의회는 이 문제 협의를 위한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정부의 결정사안이라는게 협의회의 입장이었다. 이밖에 항공산업 신규진출도 업계의 조정에 맡기고 있으나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민간 자율조정이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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